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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의 삶

10.06.17-12.06.17; 슬로베니아에서의 단상

by 경계인 A 2017. 6. 15.

이따금 어느 이름 모를 연못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있다.

 

산 속 깊은 한 구석에 숨겨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실개천 만이 유일하게 조그맣게 졸졸 흘러 들어오고 있는, 섬뜩하리 만치 조용한 어느 이름 모를 연못 말이다.


무채빛 연못 가득 가라앉은 침전물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일 없이 그 안에서 그저 썩고 또 썩어갈 뿐이다. 고여가는 연못은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조용히 천천히 그렇게 썩어 죽어갈뿐이다.


그런 연못과 내 자신의 모습이 기묘하게도 자꾸 겹쳐 보이는 이유는 어째서 일까.


졸업을 앞둔 대학 생활의 끝자락, 만 21세의 나는 서서히 침전하여 썩어가고 있다. 가슴 안에 꽉찬 응어리들은 사라지는 일 없이 가슴 한 자락을 계속 쿡쿡 찌르고 있다. 연청빛 멜랑콜리함과 암청빛 슬픔은 가슴에서 기어나와 머리 속까지 잔뜩 헝클어 놓아 이성과 합리는 물을 잔뜩 먹은 솜마냥 무겁고, 먹먹하기만 하다.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나는 그 바닥에서 가만히 수면 위를 올려다보며 어떠한 생명도 품지 못한채 죽어가는 연못 표면에 산란하며 반짝이는 햇빛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할 때가 있다. 그 뒤에 숨겨진 무언의 의미가 있어서, 운명이나 큰 뜻이 있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인생사를 이루는 일들은 우연의 연속의 산물이메, 그 우연한 결과와 발생에는 의미 대신 개개인이 부여하는 가치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연민,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의미 부여를 배제하고 차가운 머리로 냉정히 판단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뿌연 머리로 쉬운 일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불어온 바람 한 줄기는 폭풍이 되어 가슴을 한바탕 헤집어 놓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은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과 합리에 기반하여 생각을 정리해보는 일이리라. 그래서 나는 2017년 6월, 저녁놀 지는 블래드 호숫가 벤치에 앉아 가슴 속 크게 들어앉은 연청빛 멜랑콜리함과 낮잠 뒤 차분히 가라앉은 지금의 머리를 써서 내 자신과 몇가지에 대해 마주해보는 것을 시작하려한다. 아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어떠한 종류의 답을 얻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 A, 너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하여.


어쩌면 너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억지로 무시하고, 억누르고 있었을 뿐. 너를 처음 마주한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호감이었다. 동그란 얼굴과 하얀 피부, 애교스러우면서도 장난기어린 기색이 있는 눈매와 입가. 오밀조밀 모인 순진한 기색의 이목구비. 낯선 나를 보고 머뭇거리던 네가 이윽고 경계를 풀고 다가와 보인 네 모습은 흥미를 느끼지 않고 견디기엔 어려운 종류의 무언가였다. 다만 나는 당시의 나는 끔찍했던 2012년을 극복하지 못한채 아직 그 안에 갇혀 지쳐있었고, 너에게 다가가도 될까하는 확신을 가지지도 못했다. 일부로 이런 감정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며, 그저 이유 없이 너에게 너무 정을 붙이는 것을 피하려던 나였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아마 너와 얻은 편안한 친구관계와 너와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망칠까 하는 불안감, 지금의 나로는 너와 나 모두를 상처입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 조금 더 범위를 좁히면 이런 저런 구설수가 떠돌것이 걱정되어 선뜻 더 관계를 좁히려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의 너는, 너무도 순수하고 말랑말랑 연약해서, 감히 건드릴 엄두가 안 났던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2015년 10월 내 트라우마의 근원과 대면하여 2012년에서 걸어나왔고, 다행증 환자처럼 들뜬 나의 가슴과 새로운 여자에 대한 호기심, 내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인간임을, 트라우마를 극복했음을 증거처럼 찾아 성급하게 연애를 시작했다. 너도, 너는 무엇이라고 부를지는 모르겠다만, 사랑에 빠졌다.


사실 네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그걸 직감하고 있었어. 너와 그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기류도, 그 눈빛도,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던 그도, 나는 분명 다 감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가 나에게 너와의 관계를 고백하기 한참 전부터. 그때 나는 분명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 어쩌면, 분노까지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참 나쁜 새끼지. 내가 너에게 보이던 그에 대한 불확신도 확실히 절반정도는 내가 그에게서 느끼던 인간적 찜찜함도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분명 너가 관계에 들지 않았으면, 다른 남자 곁에 네가 서질 않길 바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임을 나는 그때에도, 지금도 알고 있었고, 알고 있다. 그저 내 자신을 속여가며, 너를 위한 친구로써의 우정이고 걱정임을 자신에게 되뇌고, 그걸 믿으려고 노력했을 뿐. 


네가 마침내 그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래서 그와 분명 더 가까워졌다. 그가 나에게 인간적 호의와 신뢰를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 놓은 것도 있었지만, 분명 내가 그와 친해진 궁극적 이유는 당시의 나는 전자의 이유라고 합리화했지만, 네가 그에게서 상처입지 않았으면, 네가 궁극적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너를 위해서 적절한 조언을 제공했고, 너에게는 너 자신을 위해 적절한 조언을 제공했다. 너가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 그때의 나는 얼마나 기쁘면서도, 가슴이 찢어졌는지 너는 모를거다. 나도 내 가슴이 왜 찢어지는듯 한지 애써 무시하고 모른척 했으니까.


B와 사귀면서도, 내 눈은 왜 너를 향해있었을까. 그래서 친구니까- 라며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만지고, B의 본능적 경계심을 애써 안심시키며 너와 가까이 지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너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해소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저 내 자신을 합리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말야.


지금 내가 너에게 느끼는 폭발적인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크로아티아에서 마주한 너에게 느낀 나의 감정은 지금까지 내가 느끼던 잘 억누른 덕에 새어 나오는 것에 그치던 정도의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이었어. 그래서 나는 당황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가슴도 머리도 꽉찬 지금이기에 너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다른 이유는 아닐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과는 별개로 너에게 느끼는 감정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날뛰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어쩌면 B와의 관계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듯한 모습이기에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만들어진 감정의 빗장이 고장나서인지도 모르겠고, 그 모든 아픔과 고통에 매몰되어 다른 것에 대핸 생각할 여유조차 없던 작년 겨우내부터 이번 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지나서 인지도 모르겠지. 어쩌면 의식 깊은 곳에서는 지금 나와 B에게 남은 것은 이별 뿐이란 것을 인지해서인지도 모르겠어. 지금 글을 쓰는 지금, 네가 무척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나는 두렵다. 나는 네가 내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던 내 미래 속에 살아갔으면 좋겠어. 네가 내 미래에 있으면 좋겠어. 내가 아직까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너를 사랑한다거나 해서 교제하게 된다고 해도, 이는 너와의 미래 그 일체를 판돈으로 올리는 것이 되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게 될테고, 우리가 틀어지게 된다면 너와 나 사이에 있던, 있는 그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은 퇴색되어 무너져 내리고 말겠지. 나는 그런 미래가 너무나도 무섭다. 다시 너를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미래가.


그리고 곧 나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겠지. 너는 홍콩 오피스로 옮기는 것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기적적으로 잘된다고 해도 장거리 연애가 될테지. 네게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아. 이성적으론 그렇기에 군대에 다녀와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다시 다가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하지만, 하지만 이기적인 나이기에 내가 없는 그 기간 너의 옆에 다른 남자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다.


그렇기에 너에게 어떤 방식으로던 마음을 전하고 가야할지, 그러지 말아야 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 물론 가장 급선무는 B가 되겠지만, 답할 수 없는 상념이 너무나도 많다. 이틀 남은 시간 동안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겠지. 술을 마신 지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아니지 싶다.


하루가 지났고, 많은 생각을 했어. 대부분은 그 그림자조차 쫓지 못하는 마음 바닥 깊은 곳의 이야기, 연못 깊숙히 어딘가 바닥에 침전해 있는 나의 모습을 너에게 보이고 나니 참 기묘한 기분이야. 무섭고 두렵기도 해.


난 무서워. 네 앞에 서면 내 손으로 내가 정한 규칙과 원칙으로 만들어진 안전 장치를 풀어버려. 이성과 감정은 한데 뒤엉겨 서로를 떼어낼 엄두도 못내겠고, 그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통제해야할지도 모르겠어. 자꾸 내 안 깊은 곳에 들어오는 네가 무서워. 언젠가 네가 떠나가 버릴까봐.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 미래를 걸어가지 못할 너라면 내 안에 더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어. 그러면서도 네가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모순된 내 자신을 발견해버려. 나는 알아. 최소한 지금의 나는, 네가 날 떠나는 미래를 감당하지 못해.


너는 알지 못하겠지. 너를 생각하면 가슴 속에 잔뜩 부푼 풍선이 들어 있는것만 같이 느껴져. 차마 다 전하지 못하는 말에, 가슴 속과 머리 속 모두에 꽉찬 너무나 많은 안 속의 이야기들에 숨 쉬는게 벅차올라. 글로는 차마 오롯이 실어 담을 수 없는 이 감정과 말들에 벅차서, 너에게 백지 편지를 전하고 싶어져. 그런 너무나 많은 말들과 감정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나는 너를 생각하면 정말로 숨을 쉬는게 힘들어져. 


어째서 네 생각은 그렇게도 나는지. 이 곳에 와서 B 생각보다 네 생각을 거의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내가 너에게 가진 가슴 속 이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무엇인지 어렷품이 알 것만 같아서 속단하고 싶지 않고, 더욱 두려워져. 나는 아마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을 처음부터 사실은 알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 어째서 너에게 느끼는 내 감정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격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사실은 ‘갑작스러운’ 따위는 아니었더라. 어제 너와 했던 이야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을 항상 납득 시킬 수 있어야만 하는 인간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성과 합리에 근본 가치를 두고 행동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미친듯 날뛰는 감정 앞에서 내 이성과 합리가 오랫동안 견뎌내지 못하는 인간임도 알고 있어. 나는 완벽하지 못하고, 트라우마 덩어리의 인간이니까. 그러니만큼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려고, 그런 감정이 내 자신의 통제권을 잡아버렸을 때 이성과 합리를 동원해서 요새를 쌓아버려. 내 행동 논거를 합리화 하려고, 내 자신을 옳다고 믿으려고. 그래도 긴 세월간 온갖 풍파를 겪으며 얻은게 없진 않은 모양이더군. 나는 그런 통제권의 상실이 일어날 때 나도 모르게 보험을 드는 것 같아. 어떻게 말하면 이중사고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합리와 감정 앞에 통제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나는 합리와 이성을 근거로한 완벽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 재평가와 재해석을 만들어서 의식 저변 어딘가에 쑤셔박아버려. 그들은 마침내 내 비합리와 감정이 명백한 오류들의 연속 앞에 파탄 났을 때 뛰쳐나와 내 자신을 무너뜨리고 통제권을 다시 잡아버리곤 해. 내 자신을 보호하고픈 욕구가 강한 것일까, 나는 이걸 참 잘하더라. 그래서 내 자신조차, 명백한 논리적 파산 앞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속여버리는거다. 내 행동의 근거는 옳았어야 하니까. 난 내 행동 논거에 있어 자신의 부조리와 모순을 견디지 못하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마 그런 파탄 앞에 직면해 내 자신의 에러를 수정하고 디버깅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런 격정적인, 폭발적인 감정이 아마 내 본심이었던 것일테지. 크로아티아는 그저 계기이고 분수령이었을 뿐이야. 그저 시간 문제 였을 뿐, 어떤 식으로던 일어날 일이었던것 같다 이건.


어째서 나는 네가 관계를 시작하려 했을 때 그토록 그것을 바라지 않고, 비동의를 표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네가 관계에 들었을 때 가슴 한 켠 어딘가 찢기듯 아릿했던 것일까. 어째서 너는 내 꿈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떠들던 보통화 앞에서 네가 쓰는 보통화는 귀여운데 하고 떠올리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항상 우정이고 친구고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며 네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어루만지며 애틋한 마음을 느껴왔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네가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듯한 말을 어제 했을 때 그토록 불안감을 느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항상 너를 만지는 다른 남자들에게 분노와 질투라고는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항상 너를 내 주변에 두고 싶어하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너와 문자를 하고 있자면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올라가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너에게는 유독 B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너에게만 유독 부드럽게 대하게 되는 것일까. 어째서 너를 대하는 나의 목소리에는 내 자신도 느낄 수 있는 – 하지만 무시해온,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헤어진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그런 슬픔을 느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너의 옆에 다른 남자가 함께 걸어가는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곳에서 B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나는.


‘친구’라고 되뇌이던 나에게는 이런 오류들이 계속 쌓여왔어. 지금의 나와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저 이런 오류의 축적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시스템 에러를 뱉으며 내 자신을 재정리한 결과일테지.


이 시간이 헛되진 않았나봐.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감정은, 가슴은 강하게 무어라고 외치지만 그들의 말을 최소한 지금은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너를 머릿속에 그리면 아릿해. 그럼에도 나는 거의 너의 생각을 하며 이 곳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단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것이 귀결된다. 지금의 네가 내 미래에 점한 길고 얇고 안정적인 관계를,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미래에 존재하는 너의 존재를 걸고 감정이 하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 이게 내가 앞으로 고민해야할 질문일테지. 겁이나. 네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는게. 아직 속단하긴 이를지 모르겠지만 – 아니면 내가 그렇게 내 자신에게 이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너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나도 눈치채지 못한채 언젠가부터. 언제부터였을까. 내 미래 속의 너를 상상하던 나는.



2. 나의 미래에 대하여.


그 과정까진 좀 엿같겠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 항상과 같은, 비관론적 낙관론의 입장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와 내 자신이 자신을 멋지다고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으니 만큼 생각하는 이런저런 상념들은 있다. 상념은 상념으로, 한데 모이지 못한테 여기저기 두둥실 정돈되지 못한채 부유할 뿐이다. 현재의 나에게 근본적 행동의 원칙과 가치관에 대한 중심점은 존재한다. 다만 그 근원적 원칙에 근거한 세세한 생각들이 정돈되지 못한 만큼, 가능한만큼 이 시간을 빌어 상념들을 정돈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인간관계에 관하여. 요즈음 들어 그런 기분이 든다. 내가 약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는 그런 묘한 기분.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의지하고, 완전하지 않다고 한들 마음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 고로 가족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걸지 않고, 의존성을 형성하거나 모든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간 세워 일관성 있게 지켜오던 이 원칙이 점점 무너져내린다. 어찌보면 C를 극복한 이후로 응당 일어났어야할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로 인해 내가 얻은 교훈과 변화, 내 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응당 일어났어야 할 변화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기존 원칙의 고수가 가장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임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어떤 이유건 나에게 내면의 동요, 혹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임은 분명하다. 혹은 감정적인 부분이 더욱 큰 영향력을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무작정 부정하고 내 자신을 이전과 같은 일종의 감정적 거세를 강제하는 것은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훨씬 클 것으로 사료된다. 대부분에 일에 쓸데없이 흥분하는 일 없이, 입가에 일면 시니컬해보이는 – 혹은 예의발라보이는, 미소를 살짝 띄운채 관조하는 태도 자체는 고수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지나치게 들뜨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내 자신이 정한 원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 더 관용적인 태도로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억지로 현상과 원칙 간의 불일치를 부정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 불러올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 단 많지 않은 이들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또 상처 받을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겠지. 이성적으로는 바보같은 짓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명, 혹은 몇명에게 내 모든 면을 보이는 위험한 짓을 한다는게. 하지만 나는 A, 나를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겠다는 너의 약속을 한 번 믿어보련다. 아픈 방법으로 버려야 했던 하나의 진실된 나의 이해자에 대한 기대를, 의심스러운 자세로나마 한 번 믿어보겠다. 


둘째로 돈에 관하여. 돈을 위해 인생을 산다면 그 얼마나 공허하고 음울한, 텅 빈 소라껍데기 같은 인생인가. 다만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오만함의 발로이며 감성적 허영에 기반한 자기최면이메 위선이다. 나는 내 자신을 멋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일례로 몇가지 내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 바람들을 적어보자. 일단 미래에는 동남아 휴양지 어딘가, 혹은 달마시아 해안 어딘가에 여름 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필요한 일이다. 옷을 좋아하니만큼 미래에도 나의 의복에 – 그리고 생길 가족의 의복에, 마음을 놓고 돈을 쓰고 싶다. 역시 돈이 필요한 일이다.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고 싶고, 벤틀리 정도 되는 묵직하고 좋은 외제차를 몰고 싶고, 1년에 한번 정도는 호화롭게 여행을 가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여행도 보내드리며 호강시켜드리고 싶고, 친어머니에겐 원하시는 문경에 땅을 사드리고 싶다. 좋은 남편이 되고 싶고, 우리 아버지 같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아이를 갖게 되면 아이와 함께 자랄 커다란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고, 아내와 함께 피부 관리도 받고 틈틈이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며 젊고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족과 비싼 파인 다이닝을 먹고 싶고, 고풍스럽게 서재를 꾸리고 싶다. 골프나 테니스 같은 운동 취미도 하나 갖고 싶고, 위급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킥복싱과 전술사격을 배우고 싶다. 내 자신을 위해 중국어, 러시아어, 말레이시아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고, 평소 어렴풋 생각하던 생존주의적인 취미도 실천해보고 싶다. 지금의 나는 A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다. 아이들에게 최소한 내가 받았던 수준의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고싶고, 아이들에게 연민과 공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가르치되 훌륭한 현실감각과 냉정한 지적능력, 세상의 악의에게서 자신을 지키는 법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이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본인을 평가하건데, 내 성정이 돈보다는 명예와 권위를 쫓는 성격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돈이라는 것은 본인이 하는 일에 따라오기 마련이고, 응당 따라오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직하게 소처럼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만을 계속해나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돈을 낳는다. 자본이 있으면 얼마든 더 큰 자본을 만들 수 있고,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는 시스템의 노예가 될 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스템적 이해가 필요하다. 즉, 돈을 굴려야한다. 세상 만사는 경제적인 측면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항상 영민하고 예민하게 시류를 읽고 세간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자. 항상 머릿속에 들어오는 소식들에 대해 이러한 소식이 그 범위 밖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항상 분석하고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일지어다.


셋째로 진로에 대하여. 이상적으로 군생활이 풀린다고 전제하건데, 해군 통역장교로 임관하여 청해부대에서 1회 연장근무하여 2진 연속 근무, 그 이후 한국에서 사령부 생활을 하며 외교관 시험에 필요한 가치; 한국사 시험이나 중국어, 등을 쌓으며 이따금 기회가 될 때 순항 훈련을 다녀오거나 하면 이상적으로 그리건데 6-8천만원 수준의 종잣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있는 자본까지 어느정도는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투자를 해서, 군 제대까지 최소 1억원, 이상적으로는 3억원을 모으는 것을 일단 목표로 하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진로에 대하여서는 군생활 동안 중국어를 훌륭한 수준으로 습득하여 군 제대 뒤에는 약 1년동안 통합논술고사를 준비하고, 늦어도 2년 안에는 시험을 패스하여 외무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바람대로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고배를 들이켜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항상 복안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있다. 혹여 재수에도 실패할 경우, 일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해외 대학원 진학일 것이다. (가능하면 A에게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해외 대학원에 진학한 뒤 잘 졸업하여,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은 첫째로는 골드만 삭스 백오피스 일 것이고, 둘째로는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일일 것이다. 그 이외에는 글세. 대학원 졸업 이후의 일은 고민을 좀 해보아야겠지만, 외교관후보자 시험에서 탈락 시 해외 대학원 진학은 일단 염두에 두고 있도록 하자. 가능하면 최소한 생활비는 내 자비로 충당하는 방향으로.


농담으로 친구들이 정계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건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자. 인생사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일이다만. 글쓰는 일은 계속하도록 하자. 살다보면 잘 풀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가만히 글을 쓰며 돌이켜보건데, 언젠가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내 나이 때의 아버지는 무슨 고민을 했는가, 하고. 내 나이때의 아버지가 하던 고민이,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과 너무나도 닮아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3. 가장 어려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찾기 힘든 B, 너에 대하여.

슬로베니아에서 내내 네 생각을 해보려고 했는데,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야 나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 아마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무슨 말을 찾아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서, 길을 잃은 것만 막막한 기분에 이렇게 미룬 것 같아. 지금의 나에겐 너를 생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2년 가까운 연애. 어떻게 말하면 짧고,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이겠지.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너와 나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러면서 아마 우리 둘 다 어떤 부분에선 조금씩, 어떤 부분에서는 꽤 많이 변해왔을거야. 연애라는 것은 결국 서로를 이해가고, 맞춰나가는 과정이고, 우리가 그런 면에서 노력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 부딪히기도 참 많이 부딪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 아직도 그렇고. 모르겠어 B야. 나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다른걸거야. 처음엔 나와 다른 그런 너의 모습에 끌렸었지만, 지금의 너와 나는 서로에게 너무 지친 것 같아. 나는 네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자유분방하고, 내가 느끼는 너는 관계에 서툴러. 연애를 할 마음의 상태인 것일까 가끔 의문이 들 만큼.


미안해. 이제 더이상 나는 너와의 관계를 지속해 나갈 자신이 없어. 지금도 너에게 상냥한 말투로 대하고 있지만, 그게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무어라 할까, 좋은 남자친구로서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무언가에 가까운 것 같아서 참 슬프다. 너가 나에게 그만할까, 하고 물어왔을 때 네가 말했었지. 억지로 이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같다고. 어쩌면 나도 이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마치 감정이 마비된거 같아서, 너를 생각할 땐 이젠 어떤 감정을 느껴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네가 영국을 떠난 이후로는 너의 생각을 하는 일 자체를 피하고 있더라. 이렇게까지 서로 상처 받고 힘든 사랑은 과연 사랑인걸까.


그리고 고마워. 네가 내 제대로 된 첫 여자친구가 되어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네가 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만큼, 나도 너를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었어. 네가 잘못해서 너를 떠나고 싶어하는게 아니야. 그냥 서로의 다름에, 극복하기 힘든 차이에 조금 많이 지치고 힘들어졌을 뿐이야. 내가 얼마나 이 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자기 변호 따위는 하지 않을게. 너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어.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정말 생각 많이하고 내린 결정이야. 너에게 든 정과 너에 대한 기억들은 너와 함께 할 것을 요구하지만, 미안해 B야.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지금의 나에게는 너와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너와 내가 쌓아온 아름다운 기억들까지 모두 퇴색되어 아픈 결말을 맞이하기 전에, 서로를 기억할 때 슬프고 아픈 감정이 들게 되기 전에, 서로를 얕은 미소를 띄운 얼굴로나마 먼 미래에 추억할 수 있도록 나는 이 관계를 지금 끝내고 싶어. 서로에게 더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너도, 나도 아마 힘들거야. 빵 몇 조각도 소화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데, 2년간 사랑하고 아껴온 서로간의 기억이 아프지 않게 마모되는 일이 어떻게 빠를 수 있겠어.


나보다 잘나고, 더 이해해주고, 너와 좀 더 비슷한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고, 사랑스러운 여자야.


B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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