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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방/소설

[장편] 랑림군의 레토르트 영웅들 : 1564고지 ( 01~02 )

by 경계인 A 2017. 4. 26.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진녹빛의 수해(樹海)가 차창 가득 넘실거린다. 좌석에 몸을 거의 동여 메다시피 안전벨트를 조여 놓고, 좌석 위 손잡이를 손아귀가 새하얘지도록 붙들고 있는 노릇이었지만, 헬기가 휙휙 기수를 갑자기 틀 때마다 사타구니에 힘이 절로 들어가고 식은땀이 줄줄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쾌한 기타 전주. 귓전에 노랫가사가 스친다. ‘...And when the band plays Hail to the chief, Ooh, they point the cannon at you, Lord.’

  

  꽉 깨문 오른쪽 어금니가 잇몸을 짓누르며 아릿한 통증을 전해온다. 그 와중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조금이라도 공포를 줄여보려고 귀에 꽂아 놓은 이어폰인데, 공포를 줄이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는 하필 흘러나오는 곡이 복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다시 한 번 헬기가 산등성이를 타고 기수를 훅 꺾는다. 온 몸의 피가 왼쪽 절반으로 쏠리는 그 감각에 마음속으로 지르던 비명이 결국 입 밖으로 ‘으그어으윽’ 하고 어그러진 채 새어나온다. 헬기 천장과 기관총에 손을 올리고는 능숙한 자세로 여유롭게 몸을 지탱하는 도어 옆 사수는 그런 내 모습이 퍽 우스운 모양이다. 우스움을 감출 기색 따위는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 그가 낄낄 웃으며 외쳐온다.

  

 “랜딩 5분전!”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senator's son, son.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one, no.’

  

  몸을 상하로 미친 듯 뒤흔드는 헬기의 진동과 온 몸이 푹 꺼지는 듯한 중력 가속도, 귀가 먹어 버릴 것만 같은 로터의 굉음과 겁에 질린 나를 약 올리듯 귓전을 울려대는 베트남전 반전노래 멜로디. 거기에 더해 손아귀와 어금니의 통증과 번쩍거리는 금테 레이벤 선글라스 승무원의 비웃음까지 오롯이 함께 받아내는 와중, 나는 서울에 돌아가면 반드시 부장의 매끈한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했다.

  

- - -

  

  손아귀에 쥔 아이스 아메리카노잔이 딱 기분 좋은 온도로 시원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카페라떼가 점심식사 후의 단골 후식이었건만, 멍하니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닥을 드러내는 커피와 알아차릴 새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은 꽤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바쁜 삶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봄내음을 밀어내고 진한 녹음의 풀내음이 자리를 메운 요즈음의 서울이었다. 이제는 슬슬 덥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지라, 지나가버린 봄과 함께 카페라떼를 떠나보내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점심 식사도 맛있었고, 날씨도 좋고, 얼음이 살짝 녹아 딱 좋게 밍밍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자니 아, 인생이 충족되는 기분이소로이다.

  

  그런 여유로운 기분에 취해 단골로 가는 카페에 새로 들어온 귀여운 신입 여직원과 시시덕거리느라 점심시간 종료 10분 뒤에나 털레털레 사무실에 입장하는데, 그 모습을 하필이면 보도부장에게 딱 걸려버렸다. 


  길고 날렵한 눈매 위에 걸쳐진 금테 안경, 뻣뻣한 목과 4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운동으로 균형 잡힌 체형. 보도부장은 자기소개 없이도 본인이 어떠한 유형의 인간인지에 대해 온몸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듯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북한부 보도부장 김영태는 하필이면 내 상사였다. 하여, 일종의 갈굼이나 평소와 같은 차분하고 냉정한 독설을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의 사무실에 입장했건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 그는 근태에 대한 이야기는 간데없이 웬 시답잖은 담소로 일관할 뿐이다. 오히려 그런 그답지 않은 반응에 ‘혹시 이번에 정말 잘라 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어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다. 왜, 있지 않는가. 사형수에게도 사형 집행 직전에는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불안감에 떨며 시답잖은 담소를 이어가는데, 그가 타블렛 피씨를 내밀어왔다.

  

  이게 무엇인가 조금 혼란스러워 깨끗한 안경알 너머 그의 눈과 받아든 피씨를 몇 번 즈음 번갈아 살피다가, 나는 눈치껏 피씨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유리 액정을 슥슥 밀어가며 훑건데, 좀 읽어보자니 한동안 세간에서 시끌벅적 했던 새길령 전투에 대한 기사다. 

  

 ‘새길령 전투 그 이후... 이진욱 하사의 끝나지 않는 싸움’ 

  

  제목에 흥미가 돋았다. 르포 기사라?

  

금수산태양궁전이 대대적으로 폭파철거 당하고, 요덕 수용소가 해방되고 주체사상탑이 전망대로 리모델링되고 김정은이 육편 몇 조각으로 뭉개져 버린지가 1년 반이 다되어가건만 70년간 쌓여온 증오의 굴레는 언덕을 한참 굴러 내려온 타이어 마냥 관성이 붙은 모양새다. 매달 꾸준히 수십 명의 장병, 공무원, 파견 직원들이 이제는 ‘수복지구’ 라고 부르는 구 북한지역에서 죽어나갔다.

  

  공포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비이성이 번진다. 집단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희생양과 영웅을 찾는다. 갈 곳 없는 공포는 새터민에게 향했고, 불안감과 학습된 증오는 영웅들을 생산해냈다. 자신이 서명한 적 없는 전쟁에서 스러져가고, 누군가를 쓰러뜨린 이들은 영웅이 되었다. 어수선한 세상에서 만들어짐 당한 영웅들은 인스턴트 콘텐츠요, 소비재일지어니, 이런 레토르트 영웅들은 대중들의 감정적 배설을 위해 소비되고, 그 쓰임의 수명이 다함과 동시에 곧장 잊혀졌다. 

  

  미디어는 수요를 반영한다. 기사의 주인공 이진욱 하사는 석 달 전 즈음 한창 다뤄지던 - 당연히도 이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새길령 전투의 전쟁 영웅이었다. 하지만 기사는 그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구하지 못한 분대원들에 대한 죄책감,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전쟁 홍보물로써의 유통기한이 다한 그를 내친 군대와 국가. 요즘 세상에는 아무도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하는 이야기를 기사는 눈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흥미가 돋았다.

  

 “흥미로운 기사네요. 소재가 요즘은 감히 조명하지 않는 소재인 것도 그렇고,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사회 고발로 엮어가는 방식도 과장되거나 거부감 들지 않으면서 꽤 묵직하네요. 잘 썼네요. 그런데 요즘 이런 기사는 안 팔린다고 편집부 데스크서 자르지 않나요? 아, 역시 우리 기사 아니네.”

 “평가는 옳게 봤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틀렸어. 기사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군.”

  

  의외라고 생각했다. 구독자 성향 차이려나?

  

 “자네 언젠가 자네 명의로 르포 특집 하나 하고 싶다 하지 않았었나?”

 “입사 초 짬찌 때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죠. 남들은 쓸 엄두도 못 내는 소재 하나 크게 잡아다가 장기 르포 특집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기자라는 건 눈치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다. ‘꿈 많고 낭만 넘치던 시절이었죠.’ 하고 말을 끝내려던 나는 중간에 부장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눈치채버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이 느껴진다. 손아귀에 쥔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도 내 손이 더 차갑다.

  

 “아, 잠깐만요 부장님.”

 “윗선에서도 얘기가 돼서 말일세. 업계를 선도하는 언론, 정론지라면 남들보다 훨씬 나은 퀄리티로 신선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 아니겠나? 자네도 이런 기사 한번 해보고 싶다 했고, 해서 자네를 추천했지.”

  

  왜 나냐고 묻기도 전에 나는 스스로 답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북한부에서 남자고, 군필자며, 미혼에, 전쟁기자 일을 해봤고, 르포 기사를 꽤 다뤄본데다, 사원짬의 신삥도 아니고 과장 정도의 중량이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짬에 충족하는 - 다시 말해 막 굴리기 좋은, 그에 더해 부장이 살짝 마뜩찮게 보기까지 하는 기자는 나뿐이었다.

  

 “... 부장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자네가 옛날에 이런 것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니 그건 옛날 일이고…”


  부장의 눈매가 매섭다.


 “일단 들어보기는 하겠습니다.”

 “자네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거기서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쓰면 되네. 어느 부대 주둔지에서 보름에서 3주 정도 숙식을 함께할 걸세. 거기서 만나는 장병들이나 공무원, 주민들의 인간적 이야기 같은걸 써도 좋고, 전쟁의 현실을 고발해도 좋고. 르포는 몇 번 써봤으니 알아서 잘 쓸 수 있지 않나?”

 “제가 가기 싫다고 하면요?”

 “가기 싫음 안 가도 돼. 근데 원래 자네 연차가 한 3년 있다가 과장 달지? 지금까지 전적 봐선 좀 더 일찍 달수도 있어 보이는데, 뭐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좋다면야 굳이 말리지는 않겠네만.”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이미 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는 것이 끝난 이야기다 싶었다.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부장은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못 박은 채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까딱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집어 던지고 싶은 타블렛 피씨를 얌전히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목례까지 한 뒤,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 - -

  

  그날 저녁 불러낸 입사동기들과 함께한 회식에서 나는 삼겹살과 함께 소맥을 연료로 쉴 새 없이 들이키며 욕이란 욕을 있는 대로 쏟아냈다. 씩씩거리며 전쟁기자 일을 하면서 온갖 거지같은 꼴이란 꼴은 다 보고 온 사람을 다시 전쟁터에 보내는 놈은 도대체 어떤 악마새끼냐고 이를 갈며 연거푸 소맥을 들이키는 나를 보며, 동기들은 그저 측은한 눈길과 심심한 위로의 의미로 앞접시에 삼겹살을 잘라 덜어주고, 잔이 빌 때마다 소맥을 말아줄 뿐이다. 


 “부장 개새끼. 내가 언젠간 그 놈 끌어안고 자폭한다.”

 “그러게 왜 북한부로 갔어...”


  확 째려보는 나의 눈길에 ‘쯧쯔’ 하고 혀를 차던 정치부 동기놈 하나가 시선을 피해 고개를 스윽 돌린다. 훈수질에 속에서 열불이 올라 식히려고 또 다시 시원한 소맥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결국 그 날 새벽은 변기를 끌어안고 보냈다.

 

  윗선에서 이미 다 결정된 얘기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나보다. 다음 날 숙취에 절은 상태로 출근한 나에게 인턴이 쭈뼛거리며 건넨 서류뭉치를 읽어보니 이미 신원 확인이나 방문 허가, 방문 일정과 교통편까지 조율이 끝나있었다. 사흘 뒤 출발이었다. 갈데없는 짜증이 확 치솟아 평소 놀려먹던 인턴의 카페라떼를 괜히 뺏어먹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판문점과 개성, 사리원, 평양 순안비행장, 장진비행장을 거쳐, 팔자에도 없는 곡예비행을 하며 자강도 낭림군 연화리 1564고지로 향하고 있는 헬리콥터 좌석에 묶여 매달린 꼴로 말이다.

  

- - -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곳 1564고지에 주둔한 7사단 3연대 2대대 6중대장, 대위 김백현입니다!”

 “아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양서 연락드렸던 J일보 이우현입니다!”


  간신히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눌러내며 악을 질러 인사를 받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헬기 로터 소리에 목소리가 묻힐 만도 하건만, 중대장이란 사람은 거의 악을 써대는 나와는 달리 그 굵직한 목소리의 음량을 좀 높이는 정도로 귀에 인사말이 또렷이 들어와 꽂힐 정도로 발성이 좋았다. 헬기에서 거의 내동댕이쳐지듯 쫓겨나며 그의 인사를 받는데, 헬기가 배송 중 파손으로 유명한 모 택배회사가 배달하듯 거친 꼴로 나를 내려놓자마자 한 무리의 장병들이 후다닥 헬기에 달려들었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헬기에 달려들어 보급품을 내리는 장병들의 모습에 잠시 정신을 빼앗기니, 중대장 김백현이 “저번 주에 이 근방에서 헬기 하나가 착륙할 때 박격포에 맞아서요!” 하는 살벌한 소리를 마트에서 사올 찬거리라도 읊는 투로 고함쳐왔다. 그 소리에 괜히 어서 헬기에서 멀어지고 싶어진다.


  오클리 선글라스를 벗으며 오른손을 내밀어오는 스물일곱 여덟 즈음 먹었을 법한 훤칠한 중대장은 손아귀 힘이 어찌나 좋은지, 그가 악수를 하느라 쥐었다 놓은 오른손이 얼얼했다. 하루 내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기분에 쓴웃음이 나왔다.


 “대대장님이 지금 낭림읍에 출타중이시라 부득이 제가 이렇게 대리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결례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뻑쩍지근한 환영식 같은 건 오히려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하던 일들은 하셔야죠!”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헬기에서 멀어지는데, 나와 중대장의 한 발짝 뒤에 붙어 조용히 따라오는 장정이 눈에 띄었다. 어지간한 미군 옆에 세워놔도 꿀리지 않을 법한 다부진 체격에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키, 중위 계급장이 붙은 헬멧 아래로 날렵한 이목구비의 - 얼핏 젊은 김영태 부장은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샤프한 인상의 사내는 아마 나의 신변 보호를 맡게 된 소대장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대장은 곧바로 보상은 적고 리스크는 무지하게 큰, 실무자 입장에서 짜증만 유발하는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중위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러고는 무뚝뚝한 표정의 소대장이 나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만, “그럼 자주 봅시다, 기자님. 제가 지금 좀 일이 있어서.” 하고는 다시 한 번 나의 손을 콱 쥐어 예의 그 손이 얼얼한 악수를 남기고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중대장 김백현 대위가 나를 떠맡기고 내뺀 바람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신민우 중위는 대수롭지 않은 듯 덤덤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다시 인사를 건네며 오른손을 내밀어왔다. 이번에는 중대장과 달리 적당한 힘이 들어간 악수였다. 외꺼풀의 눈이 시원하게 옆으로 길게 찢어진 소대장은 표정이 풍부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신경한 사람은 아닌지, 나의 짐을 건네받는데 나의 피곤한 기색을 살피고는 ‘거친 비행이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번 주에 이 근방에서 헬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좀 격하게 몰았을 겁니다.’ 하고 위로를 건네 왔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 짐의 절반 이상을 왼손에 묵묵히 받아 쥔 그는, 곧장 나에게 부대 투어를 해주기 시작했다. 모래주머니의 업그레이드판인 헤스코 방벽으로 둘러싸인 적당히 넓은 부대 진지 여기저기를 말 한 번 더듬는 일 없이 조곤조곤 가이드 투어 해주는 모습을 보고 있건데, 사회에서도 똑 부러지게 자기 할 일 잘하던 사람이었겠거니 싶다. 중대장이 왜 하필 신민우 중위에게 나를 짬처리 한건지 어렷품이 알 것만도 같다.


  마지막으로 그가 나에게 소개해준 장소는 민간인 관사였다. 이곳 촌구석 연화리에도 옛 휴전선 남쪽에서 파견되어 온, 선생이나 행정 공무원, 공기업 직원이나 경찰서 설치를 위해 사전 조사를 나온 경찰 쪽 사람 등, 머물거나 다녀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그들을 무장한 장정도 꾸준히 죽어나가는 만포-혜산-장진을 잇는 죽음의 삼각지 안에 보호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북녘 깡촌에 대충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군부대 내부에 거처를 지어 제공하고 있었다.


 “키는 여기 있습니다. 2층 3호실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간단한 생필품은 방 안에 준비되어 있으나, 혹 더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시면 보급계에 알아보시면 됩니다. 중대에 없는 물건이라면 낭림읍에 출타 가는 인원이 있을 때 조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불편한 사항 있으시면 언제들 말씀해주시고요.”

 “신 중위님, 죄송한데 저는 막사에서 있을 생각인데요.”

 “...예?”

 “현장 취재 온건데 혼자 따로 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음…”


  갑작스런 요청이 꽤 곤혹스러웠던 것일까, 그가 오른 눈을 얇게 뜨며 미간을 찌푸린다. 잠깐 동안 ‘으음...’ 하고 목을 울리며 고민하던 그는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는 듯하더니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가볍게 콧바람을 내뿜고는 입을 열었다.


 “뭐 기자님만 안 불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셔도 문제없기는 합니다만... 편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가 잠깐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나도 그냥 그를 바라봤다.


 “굳이 그런 방향으로 원하신다면 중대장님한테는 제가 얘기 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 - -


 “이쪽은 당분간 귀관들과 함께 지내게 되신 J일보 이우현 기자시다. 지내는 동안 불편함 없으시도록 귀관들의 많은 도움들 바란다. 짐 푸는 것 도와드릴 수 있도록 하고.”


  듬직한 덩치의 장정 열댓의 시선이 나에게 와 꽂힌다. 생활관은 한창 고스톱 판이 한창이었던 모양인지 생활관 한 구석에 장정 다섯이 모여 있고, 나머지는 제각기 할 일들을 하고 있던 듯 했다. 그 모든 것이 일순 정지한다. 신민우 중위는 황망히 가타부타 더 말도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그가 떠나는 순간 그의 눈에 떠올랐던 빛이 마치 동정하는 눈빛이었던 것만 같아 눈에 밟힌다. 그것과는 별개로 모양새가 마치 내가 막내 후임으로 전입을 들어온 것만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내려앉은 정적에 숨이 막힌다. 그리고 정적을 깨고 누가 입을 열었다.


 “하, J일보오?”


- - -


 ‘기자님만 안 불편하시다면’ 이라는 전제 하에 신민우 중위가 나를 이끈 곳은 2중대 1소대 생활관이었다. 조립식으로 지어진 생활관은 생각보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였다. 생활관에 들어가기 전, 앞장서 걸어가는 신민우 중위의 뒷모습과 함께 생활관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 - -


  흘려들었던 ‘편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가 이런 의미였나 싶다.


  신민우 중위는 1소대 1분대 생활관에 나를 던져놓고 떠났다. 생활관의 분대원들을 스윽 둘러보자니, 별로 환대하는 듯한 눈빛들이 아니다. 외려 경계심과 적개심이 묘하게 섞인, 적대적인 공기이면 공기이리라. ‘J일보오오?’ 하는 소리가 날아온 곳을 슬쩍 보니 내무반 구석 간이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서는, 오른손으론 머리를 받히고 남은 왼손은 만화책을 넘기던 사내가 한쪽 눈썹을 치켜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회색 깔깔이를 망토 두르듯 두른 모습을 보건데, 이 분대의 실세쯤 되는 위치리라.


 “왜, 아저씨도 우리 국군 용사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빨갱이 새끼들을 잡아 족치고 있는지, 멸사봉공으로 조국을 위해 피 끓는 충정을 다하고 있는지 쓰러왔어요?”

 “어... 음...”


  그 소리에 분대원 몇이 ‘시바 기레기 납셨네.’ 하며 피식거린다.


 “원래 서울서 펜대 굴리면서 좆같은 얘기나 주절거리고 있어야할 기자양반께서 이런 촌구석까지 행차해주셨으니 영광 아니냐 얘들아. 어서 J일보오 기자님한테 저기 구석에 찌라시 좌판 하나 마련해드려라.”


  이번에는 오른쪽 목덜미에 살짝 화상자국이 보이는 국방색 반팔차림의 장정이 읽던 소설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비아냥거려왔다.


  이런 반응을 사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따지자면 그럴 법했다. 신문사들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지라, 같은 전쟁을 다룸에도 전쟁을 보도하는 관점은 달랐고, 많은 경우 국군 장병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국군 장병들 시각의 소위 ‘진보지’는 국군의 고의성 없는 민간인 오인 포격이나 찢어 죽여 마땅한 요덕 수용소 간부 같은 부역자들에 대한 사적 제재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라만 치면 온천지 사방팔방에 나팔을 불어대며 베트남 전쟁까지 들먹이며 국군 장병들을 전쟁범죄자, 유아 살해자로 고발해대는 배신자, 반역자, 빨갱이 세력들이었고, ‘보수지’의 경우에는 일선에서 부상을 당한 상이용사들의 처우개선, 행정이 꼬여 받아야할 혜택을 받지 못한 장병들에 대한 이야기, 무연고자 자살이라는 슬픈 타이틀만을 남기고 경찰서 과학 수사팀의 손에서 시청 복지계로 탁구공마냥 가볍게 넘겨지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볼펜 끝 펜 버튼을 누를 생각조차 안하면서, 신문팔이를 위해서 이름 모를 병사를 “역전의 용사”나, “영웅” 따위로 팔아먹으며 전쟁을 온갖 영광스런 수식어구로 치장하고는 쓰임이 다하면 그들을 내쳐버리는, 시원한 여의도 사무실 책상 위에 다리를 얹어놓고 노닥거리는 기득권과 결탁한 어용세력이자 프로파간다 기관지였다.


  그리고 내가 속한 신문사는, 하필이면 그 ‘보수지’ 계열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J일보였다.


  당장이라도 속이 얹힐 것만 같은 그 흉흉한 분위기에, 나는 비장의 한 수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음... 다들 말보로랑 일본 맥심 잡지 좋아해요? 평양서 맥주랑 삼겹살도 좀 사왔는데.”


  그 소리에 순식간에 분대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