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공방/소설

[단편] 켈로이드(흉터종) 환상통

by 경계인 A 2017. 1. 10.

* * *


  비가 내린다. 밤이 살풋 내려앉은 도시 위로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에 어깨춤이 젖는다. 어느샌가 암흑빛 캔버스 위로 주황빛, 흰빛의 빛조각들이 비의 흔적 위로 색색이 내려앉는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가 캔버스를 즈려밟을 때면 그 바람에 일렁이는 캔버스 위 빛의 조각들이 하늘하늘 왈츠를 춘다. 가만히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적막감만이 감도는 버스정류장에는 찬 밤공기마저 가만히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이슬비 방울방울이 아스팔트 위로 톡톡 내려앉는 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한 암전과 같은 적막. 그 깨끗한 적막에 감각이 예민해져온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왼쪽 다리가 쿡쿡 쑤시곤 한다. 주물러봐야 그때뿐인 진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류장 좌석에 앉아 가만히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면 은은히 욱신거리는 아픔에 옛날 생각이 난다. 기억이란 것은 휘발성의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흐려지고 무뎌져, 종국에는 증발해버리고 만다. 육체와 같이 정신에 남은 상처 또한 서서히 아문다. 아픔은 잊혀지고 따끔거리는 고통은 점점 무던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도 분명 있다. 물을 삼킬 때마다 느껴지는 이물감에 자신의 처지를 상기토록 일부로 목에 딱 맞게 제작했다던 노예의 쇠목걸이처럼, 어떤 기억은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눈에 띄고야마는 흉터로, 노예 목걸이로 남아 나의 심장 한 구석에 웅크린채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내 심장 속에는 내 왼다리 모양의 흉터가, 노예 목걸이가 남았다. 멍하니 길 건너 가로등 불빛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틈엔가 버스가 다가워 멈춰선다. 현실이 환상을 쫓아버린다.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을 내다보니 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잔상을 남기며 휙휙 지나쳐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상투적 풍경을 무감각하게 눈으로 좇으며 가만히 앉아있자면, 비 오는 날 특유의 축축한 냄새에 망연히 취해있는 나에게 과거가 살금살금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곤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 * *


  차창 밖으로 천천히 차량행렬이 지나간다. 아니, 엄밀히는 우리가 그들을 지나쳐간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왕복 4차선 도로에 가득 찬 차량행렬은 좀체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인다. 이따금 눈이 마주치는 운전자들의 시선 속에는 하나 같이 공포와 질시, 호기심과 증오가 적절한 배합으로 섞여있다. 포탑의 육중한 기관총과 차체의 덩치를 앞세워 차량들을 물리적으로 밀어내며 조금씩이나마 전진하고 있는 우리 차량행렬이 그나마 이 도로 선상에서 제대로 움직이는 유일한 차량이었다. 멈춰선 차량행렬 옆으로 꾸물꾸물 움직이는 피난민 행렬은 우리가 밀어내는 차량들이 도로 옆으로 넘칠 때마다 우리를 보며 무어라 저주하듯 소리를 쳐온다. 몇 번인가 차에 태워달라고 사정하며 접근하던 피난민들을 공포탄과 위협사격으로 쫓아내니 피난민들은 더 이상 감히 차량행렬에 달려들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적개심 섞인 눈으로 우리를 노려볼 뿐. 차량행렬이 천천히 전진하며 깨뜨리는 모래에 도로 가득 흰 흙먼지가 날린다. 흙먼지의 텁텁하고 건조한 냄새가 대기 중의 시궁창 냄새와 섞여 역하다. 대나무 숲 마냥 빽빽히 도로변으로 늘어선 조잡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관리상태가 좋지 않아 여기저기 노면이 깨진 아스팔트는 작열하는 태양의 열을 잔뜩 머금어 온통 아지랑이를 뿌려대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제 3세계의 분쟁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봤을법한 장면구성이었다. 다만 그런 풍경이 티비 속이 아니라 차창 밖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가디언 알파가 이하 가디언들에게 알림. 목적지까지 ETA 15분. 힘들어도 다들 조금만 참아주기 바란다.”

 “가디언 3-2는 현 상황이 매우 엿같다고 알림.”


  조수석의 첸은 운전석에 앉은 표도르가 쥔 무전기를 낚아채서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불평을 뱉어내곤 무전기를 도로 표도르에게 돌려줬다. 그러더니 씹던 껌을 신경질적으로 차창 밖으로 퉤 뱉어내고는 새로 껌 하나를 까 입 안에 던져 넣는다. 내 옆자리의 서른줄이나 간신히 넘겼을 법한 현지인 사내는 영 이 상황이 불안한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그는 이 구질구질한 풍경과는 영 이질적인 말쑥한 아르마니 양복 차림이었다. 훌륭한 사업가와 같은 복장이었다. 그 양복 위로 입혀놓은 방탄 베스트가 아니었다면. 현지인 사내는 베스트가 불편한 것인지 - 아니면 이 상황 자체가 불편한 것일까, 자꾸 얕은 한숨을 쉬거나 다리를 떨어내거나 베스트를 만지작 거리며 신경을 긁어댔다. 


 “거 다리 좀 떨지 마쇼. 정신 사납게.”


  불안스레 다리를 떨어대는 그의 모습에 온통 정신이 사나워 핀잔을 주니 총 맞은 비둘기마냥 화들짝 놀란 사내가 그제야 다리 떠는 것을 멈췄다. 예의 바른 어조로 "죄송합니다." 하는 것도 잠시, 이제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짜증 섞인 한숨을 한 번 가볍게 뱉어내고 시선을 다시 차창 밖으로 돌렸다.


  20km 남짓 되는 거리를 주파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그나마 세 번의 검문에서 한 번은 반쯤 무력을 통한 협박과 여권,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외교적 문제 운운하며 위협하고, 한 번은 뇌물을 찔러주고, 마지막 한 번은 그 모두를 사용해서 통과했기 때문에 그나마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은 형편이었다. 구질구질한 시궁창이었다. 현지 치안력과 정부군 세력은 총체적 붕괴에 직면하기 직전이었고,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올 일이 없는 나라였다. 그나마 3km정도만 더 가면 이제 이 구질구질한 시궁창과는 영원히 작별이라고 되뇌이니 짜증에 절어 놀란 망아지마냥 날뛰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껌을 짝짝 씹어대던 첸이 입을 열었다.


 “표도르, 그러고보니 가디언 알파한테 아까 드론 연결 끊긴건 어떻게 됐냐고 좀 물어봐.”

 “가디언 알파, 당소 가디언 3-1. 아까 연결 끊긴 드론은 어떻게 됐는지?”

 “가디언 알파 알림. 계속해서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마 반군이나 정부군 재밍에 휘말린 것으로 보임.”

 “백업은 있는지?”

 “…없다. 목적지까지 3km 남짓이니 조금만 참아주기 바람. 이상.”


  표도르가 무전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뭣 씹은 듯한 표정으로 무전을 듣고 있던 첸의 짜증이 폭발했다.


 “씨벌 존나게 쌈박하게 돌아가는구먼. 정찰 지원은 나가리에, 좆같은 피난민들이랑 한 덩어리로 뒤섞여서 치매 걸린 노친네 마실 나가는 속도로 철수라니. ‘철수 작전’은 지랄이 철수 작전. 차라리 집단 자살 작전이라고 부르는게 한결 정확하겠네.”


  누굴 향해 쏘아대는 것인지도 불분명한 첸의 속사포 같은 불평에 과묵하게 침묵을 지키던 표도르마저도 자극을 받은건지 가볍게 으르렁 거렸다.


 “입 좀 닫아. 우리도 짜증나.”

 “알아 씨발, 엿같으니까 불평 좀 하는거야. 씨발 사람 말도 못하게 해. 내가 대만에서 육전대에 있을땐 말이야…”


  한동안 궁시렁거리던 첸은 한 번 신경질을 부려대고 나니 조금 분풀이가 된 건지 한참 만에 처음으로 드디어 신경 긁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실 저렇게 불평하는 첸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돈벌이 때문에 여기에 오길 자원한 것이었다. 굳이 누구 탓을 해야 한다면 자승자박으로 자신을 탓하면 그만인 일이다.


  수개월 전 급작스레 발발한 격렬한 내전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즉각적으로 자국민 철수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가 활발히 유치되던 지역 중견 국가에서 일어난 내전이었던 만큼 철수작전은 그 한계가 명확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시장논리가 전쟁에까지 적용되는 21세기에서는 매우 당연하게도 민간 보안 업체들에게 큰 한탕을 뛸 기회가 떨어졌단 소리였다. 일감이 없어 경비 하청으로 업종 전환을 착착 진행 중이던 우리의 가디언 알파, 상관 폭행으로 - 그의 변으로는 상관의 졸렬한 지휘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전우를 잃어서였다고 하지만, 전역하기 전까지는 미군 땅개 소속 특수부대 모처에서 밥벌이를 해먹던 알렉산더 페터슨 예비역 상사님께서는 이 기회를 마지막 한탕으로 생각하고는 회사에서 자원자를 받았다. 북한에서부터의 연으로 회사를 처음 차렸을 때부터 끌려와 그의 행운의 부적 비스므리한 취급을 받던 나에게는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지만 말이다.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페이를 부르며 고용한 만큼 페이만큼은 신부님이나 스님들도 혹할만큼 대단했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는건 처음 자원자를 받을 때부터 명명백백히 설명된 사실이었다. 상식적으로 자기네 군대가 ‘안전히’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부담 없이 작전할 수 있는 권역 너머에 사는 인간들을 데려오라고 고용한 것이었으니 안전할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힘 좀 쓴다 하는 나라들은 이 나라 여기저기 퍼져 있는 자국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민간업자들을 비싼 돈 들여 고용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면 옆에 앉은 사내는 좀 이상했다.


  쓸데 없이 이 얘기를 왜 하는가하면 방금 이야기한 그 주인공, 옆자리의 그 현지인 사내가 신경을 긁어댔기 때문이다. 사내는 앉아 가는 내내 공연히 나를 곁눈질해댔고, 그 바람에 경솔하게도 나는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댁은 이 나라 사람 아니요? 근데 뭔 이유가 있어서 미국놈들이 거금을 들여가며 미국인 대신 당신부터, 그것도 혼자 따로 구출해오라고 하나?”

 “나도 궁금했어.”


  그리고 나의 질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첸이 덥썩 미끼를 물어버렸다. 간신히 닥치게 했는데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는 후회가 들어왔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네 보스한테도 그렇게 전해졌을텐데요.”

 “난 또 몰랐네. 뭐 위대한 미합중국의 명예로운 백인의 의무에 얽히신 분이신가봐. 그치? 해병대 끌고 가서 맥도날드 세우고, MTV 틀어주고, 정권 뒤엎어서 바나나 심어가지고 싸게 사먹고. 뭐 그런 신성한 과업? 맞지?”


  첸의 깐족거림에도 현지인 사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돈 받고 사람 옮겨주는 – 간간히 일이 꼬이면 총질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는 업계 진리를 되새기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래저래 인생을 되짚어 보면 호기심이 쓸데없이 많아서 좋은 일이 생긴적은 없었다. 그때 무전이 울렸다. 


 “가디언 알파 알림. 교차로 진입 직전인데 정체가 매우 심하니 전 차량 감속 요망.”

 “일이 꼬이려니 노처녀 심사마냥 지랄 맞게 꼬이는구먼. 이것보다 더 막히면 그게 정차지 정체냐.”


  첸이 중얼거리는데 표도르도 비슷한 생각인지 가볍게 혀를 찼다. 그 와중 현지인 사내는 불안한 기색으로 ‘저기, 혹시 담배 있습니까?’ 하고 물어온다. 대꾸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라 한 번 노려보고 시선을 옮기니 사내는 ‘아, 예 죄송합니다.’ 하고는 다시 손톱 물어뜯는 일로 돌아갔다. 그때 교차로가, 아니 야수의 아가리가 서서히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차로는 밀려드는 차량들과 피난민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엉망으로 뒤엉킨 차량들과 피난민들의 바다에 그 어디도 기동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어떤 감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우리 호송 대열이 쩍 벌린 야수의 아가리로 직진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런 불길한 감각. 당장이라도 깨어난 야수에게 간단히 찢겨 발겨져버릴 것만 같다는 그런 감각 말이다. M-ATV 3대와 방탄차량 하나 정도는 이런 환경에서라면 언제 어디서 박살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스라히 철수 지점인 국제학교에서 이륙하는 것이 분명한 오스프리들과 헬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총을 들고 있었지. 애국심과 증오로 총을 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돈을 위해 사람을 쏘지만 말이다. 쓸데없이 끝내주는 날씨, 그리고 무심코 손을 뻗어버리고 싶을 만큼 파란 남국의 하늘을 배경 삼아 날아가는 그 모습이 마치 ‘한 여름날의 꿈’ 따위의 제목이 붙은 인상주의 그림에서나 나올법히 보여 상황의 아이러니함에 실소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교차로를 비집고 들어가자 차량들과 피난민들의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피난민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멈춰선 교차로 차량 사이사이로 찐득한 타르처럼 뒤엉킨 피난민의 홍수는 더 이상 위협사격과 고함만으로는 제지가 불가능했다. 현지어로 ‘꺼져! 더 이상 다가오면 발포하겠다!’ 하고 으름장을 놓아 봐도, 피난민들은 되려 ‘자리가 없는데 어떡하라는 거요! 당신들은 지금 이 상황이 안 보이쇼?’ 하고 성을 내오는 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차량 대열 사이사이 간격을 마구 넘나드는 피난민들 때문에 우리 대열 차량 사이에 틈이 생기려고만 하면 어김없이 피난민 차량이 그 틈에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했다. 당장이라도 대열을 놓칠 것만 같았다. 경적을 마구 울려보아도 이미 교차로 온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다른 차량들의 경적소리에 묻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디언 알파, 가디언 3로부터 알림. 현지인들 때문에 대열을 놓칠 것 같다.”

 “가디언 알파다. 상황에 대해선 인지하고 있음. 곧 랑데부 지점이니 최대한 대열을 유지하며 임의 돌파 바람. 교차로 출구의 검문소 때문에 정체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첸의 무전에 돌아온 가디언 알파의 답에 표도르는 대놓고 인상을 팍 썼다. 평소 과묵한 표도르까지 ‘대놓고 근성으로 알아서 하라니 공수군 시절이 생각나는구먼’ 하고 불평을 하니 그 모습에 첸이 거슬리는 신경질적 웃음소리로 낄낄거리며 ‘거봐, 돈바스에서 한 끗발 날리던 공수군 영웅께서 철천지 원쑤 같은 자본주의 돼지 양키 소대장 뒤닦아주며 먹고 살려니까 힘들지, 우리 동무?’ 하며 껌뻑 죽는 시늉이다.


  그런데 첸의 말이 끝나고 몇 초 뒤에 무전이 날아 들었다. 가디언 알파의 목소리였다.


 “첸, 무전기 켜져있다.”


   첸은 기겁을 하며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번개처럼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어째설까 송신 버튼이 눌린채 고정되어 있던 것을 확인한 첸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고의는 아니었수다!’ 하고 변명하며 박장대소를 하고 나섰다. 비칠비칠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 다른 차량들도 낄낄거리며 웃고 있으리라.


 “길어야 2, 30분이야 친구들. 조금만 더 힘내자고.”


  가디언 알파의 격려에 무전망이 “예, 예, 더러운 자본주의 돼지 악덕 사장님” 따위의 농으로 가득 찼다.


  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매 걸린 노친네 마실 나가듯 느릿느릿 – 중간에 여러 번의 위협사격과 끊임없는 고함, 공포탄 사격, 그리고 물리적인 밀어내기로 피난민들을 위협해가며, 전진한 끝에 드디어 검문소의 모습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앙분리대를 뜯어온 듯한 콘크리트 장애물과 모래주머니, 비록 수동이지만 차단봉과 간이 초소로 구성된 꽤 그럴듯한 검문소였다. 눈에 보이는 병력들도 대충 한개 분대 규모는 거뜬히 넘는 규모에 무장상태와 군기도 양호해보이는 것이 지금까지 지나쳐온 검문소 중 가장 검문소다운 모습이었다. 외국인 철수 지점 중 하나로 지정된 국제학교로 가는 길목이기에 이런 병력이 배치되어있나 싶었다. 뭔가 꼴이 우스웠다. 수도 함락이 목전인 마당에 어중이떠중이들은 전선으로 내보내서 무의미하게 대량으로 포로 양산이나 해대면서 정예들은 마지막까지 이 상황을 초래한 위정자들과 외국인들의 신변 보호라니. 구질구질한 시궁창다웠다.


 “저게 아마 마지막 검문소지?”

 “그럴걸.”


  표도르의 대답 뒤 첸이 불현듯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듯 ‘야, 껌 먹을래?’ 하며 껌 하나를 내밀어온다. 뒤돌아보지 말고 네 섹터나 간수하라고 대답하니 ‘고지식한 한국놈.’ 하고 툴툴거린다. 그러더니 이제는 현지인 사내에게 ‘거기 수상한 양반, 껌 먹을래요?’ 하고 껌을 디미는 것이다. 사내가 ‘감사합니다.’ 하며 껌을 집어 드는 그 순간이었다.


  차를 향해 날아든 첫 번째 사격에 첸의 목에 구멍이 뚫렸다. 깔끔하게 그의 목을 관통한 총알이 그의 동맥을 찢어놓으며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내 얼굴 위로 쏟아진다. 표도르가 반사적으로 운전대를 확 꺾으며 악셀을 밟는 순간 앞에 가던 M-ATV, 가디언 2가 어디선가 날아든 대전차로켓에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스쳤다. 반사적으로 현지인 사내의 고개를 콱 누르고 고개를 숙이니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한 피가 뚝뚝 흐르는 첸의 얼굴이 힘없이 데롱거리며 내 뺨에 부딪혀 내 얼굴에 피칠갑을 한다. 다음 순간 차가 온몸을 패대기치는 충격과 함께 멈춰 섰다. 조수석 좌석에 강하게 머리가 부딪히며 시야에 스파크가 튄다. 두피가 찢어졌는지 목을 타고 피가 흐른다. 고개를 드니 표도르의 옆머리가 터져 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리고 끈적거리는 역한 피 냄새가 스친다.


  하이 피치의 이명이 온 머릿속을 긁어놓는 듯하다.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당장 뛰쳐나오기라도 할 듯 미친 듯 뛴다. 이성은 정지하고, 생존 본능과 반복 숙달된 척수 반사적 감각만이 죽음이라는 야만 앞에서 살아남아 동물적으로 몸을 움직이란 명령을 내릴 뿐이다. 나는 차 문을 열고는 얼이 나간 현지인 사내의 멱살을 틀어쥔채 그를 차 밖으로 패대기치며 차에서 빠져나왔다. 뒷바퀴 뒤에 현지인 사내를 던져놓고 앞바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온통 둔기로 한 대 뒷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듯 울려대는 머리, 두개골을 안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 몇 차례나 고개를 마구 뒤흔들어봐도 귓전에는 심장소리와 숨소리, 하이 피치의 이명만이 죽음의 앙상블처럼 들려올 뿐이다.


  순간 총알이 아스팔트를 치고 산산히 작은 조각들로 부서지며 나온 조각 중 하나가 튀어 왼팔뚝을 가볍게 찢어놓았다. 그 고통이 전하는 살아있다는 실감에 기묘하게도 안도감이 들어 터널 비전이 걷혔다. 비로소 아드레날린을 통제하고 냉정히 사고할 수 있었다. 그제야 목덜미의 이물감이 느껴져 손을 뻗으니 뜨뜻미지근한 뇌조각이 찐득하게 손에 달라붙어 묻어 나온다. 엿 같았다. 나는 힘껏 손을 털어 표도르의 뇌조각을 날려버렸다.


 “당신 미국 끄나풀이면 권총은 쏠 줄 알지? 이건 안전장치고, 안전장치를 이렇게 아래로 내리면 격발 가능. 쏠때는 꼭 두 손으로 이렇게 꽉 쥐고 쏘고, 슬라이드를 한번 몸 쪽으로 당겼다가 찰칵 하는 느낌에 놓으면 장전 된거요. 장탄 수는 7발이니까 세면서 쏘쇼.”

 “아니 잠깐, 무슨.”

 “저기 앞에 우리 사람들하고 합류 안 하면 당신은 미국 못가고 나는 집에 못가요. 그러니까 바짝 붙어 따라오쇼.”


  망연히 질려 기겁을 하는 현지인 사내는 그 말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본네트 위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교차로에 꽉꽉 들어차있던 차들에서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온 피난민들이 십자포화에 걸려 쓰러지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도망치던 어머니의 등 뒤로 총알이 날아든다. 그 모습에 아내와 아이를 구하려고 다시 뒤돌아 달려오던 아버지에게는 우리 쪽 총알의 유탄이 튀어 날아들었다. 아비규환이었다. 피난민들이 쓰러지는 모양새를 보고 대충 어느 방향에서 총알이 날아오는지나 유추할 수 있을 뿐 그 규모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온 차 사이 엉겨 붙었던 피난민들은 포화 사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름 7.62mm와 5.56mm, 12.7mm 금속 덩어리 안에 응축된 증오에 꿰뚫려 가을날 짚단처럼 스러져간다. 헤드셋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당소 가디언 3 알파, 입감하는 소는 응답 바람. 가디언 3-1, 3-2은 KIA. VIP와 나는 멀쩡하다. 씨발놈의 적정 규모 파악은 됐는지? 다들 입감하는지?”

 “당소 가디언 4, 저 씹새끼들이 검문소만이 아니라 10시 방향에도 쫙 깔린 것 같다. 개 씨이발놈의 RPG도 저쪽에서 날아왔음.”

 “숫자는?”

 “로컬들에 가려서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알림!”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째선가 가디언 알파가 말이 없음을.


 “잠깐, 가디언 알파는? 왜 말이 없어? 가디언 1 입감하는 소 없는지?”


  그리고 가디언 알파와 같은 차량에 동승했던 네일러의 웨일즈 사투리가 잔뜩 낀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저 씨부럴 잡것들한테 맞아서 페터슨 상태 안 좋수, 씨발 우리가 대표로 존나게 두들겨 맞느라 설명하긴 힘들고, 퇴출해야 하는데 엄호 좀 부탁하겠수다!”


  과연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가디언 알파가 탑승했던 M-ATV, 가디언 1이 가장 선두에 있던 탓에 쉴 새 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 뒤에 바짝 붙어가던 가디언 2는 초탄에 RPG를 맞아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매캐한 검은 연기를 대기 중에 뿜으며 활활 타고 있었고, 우리 차 뒤에 따라오던 가디언 4는 대열을 놓쳐 약 50미터 뒤에 낙오되어 육중한 차량의 무게를 앞세워 피난민 차량들을 밀어대며 사선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디언 1에게 제압당한 것인지 몇 발 위협적으로 날아들던 대전차로켓이 더 이상은 날아들지 않았다. 약 20미터 전방에 고립되어 잔뜩 소화기 사격을 뒤집어쓰고 있는 가디언 1은 차체와 충돌하며 박살나 튕겨나오는 총탄 파편들의 모습이 마치 대낮에 콩알탄 폭죽이라도 터뜨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무리 봐도 자력 탈출은 불가능해보였다. 판단을 해야 했다.


 “네일러, 가디언 알파 말고 피해는?”

 “생채기 뿐이여! 다들 씨벌 멀쩡혀!”

 “좋아, 계속 응사하고 있어, 전투원 넷뿐으론 부상자 끌고 퇴출까진 힘들어, 내가 가겠다.”


  무전을 마치고 나는 현지인 사내를 돌아봤다. 현지인 사내는 공포에 질린 얼굴이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마음을 다잡으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 낮추고 잘 따라오쇼.”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는 몸을 낮춘 채 눈앞의 피난민 차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달리다가 막히면 차량을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그리고 현지인 사내를 먼저 넘기고 네번째 차량의 본네트를 미끄러져 차량 옆으로 몸을 날릴 때였다. 나에게도 총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본네트를 미끄러져 넘는데 운전석의 사내의 텅빈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이마 한 가운데 뚫린 구멍에서 흐른 피가 그의 셔츠를 적시고 있었다. 땅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날아든 총탄이 엄폐한 차량의 옆 유리창을 온통 깨부쉈다. 땅바닥에 착지하며 일곱 살쯤은 되었을까, 어느 여자아이의 시체를 깔고 앉아버렸다. 기겁을 하며 옆으로 펄쩍 뛰고는 아이의 시체를 발로 밀어버렸다. 현지인 사내는 울고 싶은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의 시체가 힘 없이 지직-하고 지면에 마찰하며 핏자국을 남긴다. 그래도 거의 다 왔다. 차량 하나만 더 건너면 그때는 몸을 노출 시킬 필요 없이 가디언 1에 다다를 수 있었다.


 “씨발.”


  계속되는 사격에 운전석의 시체가 퍽퍽 하고 터져나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별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리라. 사격이 잠깐 멈춘 순간, 나는 “지금이요!” 하고 소리치고는 이를 악물고 다음 차량으로 뛰쳐나갔다. 총알이 고속으로 공기를 꿰뚫고 지나가며 쉭쉭이는 섬뜩한 파공음이 귓전을 스친다. 현지인 사내를 본네트 위로 거의 던지다시피 하여 통과시키고 차 본네트 위를 미끄러지는데 등 뒤로 묵직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 바람에 폐부에서 공기가 컥하고 밀려나온다. 등짝이 곤봉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둔탁하게 얼얼했다. 방탄판에 대구경탄이 하나 맞은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거의 기다시피 몸을 낮추고 뛰어 불타는 가디언 2를 지나 – 불타는 가디언 2로부터 넘실거리는 불길 속 힐끗 보인 검은 형태는 사람이었을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찌그러진 채 처량히 유기된 차량의 뒤꽁무니를 끼고 도니 가디언 1이 있었다.


 “개씨발.”


  그리고 거기에 가디언 알파가 있었다. 다리 하나 없는 가디언 알파가. 그보다 조금 옆에는 그의 끊어진 다리가 뒹굴고 있다. 저혈량 쇼크로 가볍게 손을 떨고 있는 반쯤 핏기 빠진, 새하얗게 질린 그의 생기 없는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만들다 만 밀랍 인형 같아 사뭇 불길했다. 수년을 매일 같이 보아오던 인간이 지금처럼 이질적이었던 때가 있었을까. 새빨간 장미꽃과 같은 모습으로 창백한 피부 위로 피어난 선혈 자국의 언밸런스함이 섬뜩해, 기분 나쁜 전율이 예리한 날붙이처럼 나의 머리끝부터 발끝을 오싹히 훑고 간다. 그 전율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문득 시선에 닿은 현지인 사내는 자리에 주저앉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빙신아 정신차리라!”


  포탑 위의 네일러가 소리쳤다.


 “페터슨 왜 저래!”

 “하차하는데… RPG가 치고 튕긴 파편에…”


  가디언 알파에게 다가가 그의 맥박을 짚었다. 다리에는 지혈대가 적용되어 있었지만 허벅지 동맥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너무 많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맥박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했다. 그가 탁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무어라 중얼거린다. 총성에 묻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의 입가로 귀를 가까이 댔다. 등 뒤에서 ‘씨발 몸통에 맞았어! 뒤질뻔했네!’ 하는 고함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네가 지휘권 인수해서 국제학교까지 퇴출해…”


  귀를 입가에 들이밀다시피 대고서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그의 상태로 보건데 가망이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본 그의 탁한 눈은 생기가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힘을 담고 있었다. 어서 하라는 듯 재촉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는 가만히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헤드셋 마이크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러 켰다.


 “…가디언 알파 전투불능임으로 현 시간 부로 최선임인 내가 지휘권 인수한다.”

 “…옳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가디언 4, 귀소 현 지점에서 11시 방향에 유기된 가디언 3 차량 쪽이 그나마 뚫고 나오기 수월할 것임. 뚫고 나와. 가디언 1에서 엄호 사격을 제공하겠음. 가디언 4는 10시 방향으로 계속 제압사격 유지하며 현 가디언 1 지점으로 속행해. 이쪽에서 검문소까지 길을 뚫겠음.”

 “장애물은?”

 “그쪽 차량들은 대부분 세단이다. 무시하고 밟아버려. 우리 차 덩치면 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가디언 1의 차량으로 기어들어갔다. 대기 중에 진하게 깔린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세를 낮추고 창문을 통해 유심히 바라보니 널브러진 피난민 시체들 사이로 번쩍거리는 섬광이 보인다. 포탑에 올라가 있는 네일러의 다리를 팍팍 치고 그를 올려봤다. 그가 사격을 퍼부으며 ‘와!’ 하며 대답하는 그 순간 포방패에 튕긴 총탄 파편이 그의 뺨을 면도칼 상처 자국마냥 찢어 놓았다. 그가 내뱉는 욕지거리를 들으며 나는 외쳤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방향에서 조금 더 좌측으로! 수풀 속에 암녹색으로 칠해진 콘크리트 블록! 보여?”

 “오냐 자알 보이요!”

 “철갑탄 장전하고 날려버려! 저 뒤에 멀티캠 입은 새끼가 기관총 사수 같은데, 저 뒤에 있어!”


  차량에서 빠져나온 직후 포탑에서 둔중하면서도 경쾌한 중기관총의 총성이 이어진다.


 “당소 가디언 3 알파. 예하 가디언들에게 알림, 어차피 교차로에서 우회 퇴출은 불가능. 정면돌파 한다.”

 “가디언 1. 네일러는 적 지원화기 중심으로 11시 방향 측면에 계속 사격 하고, 내가 셋을 세면 히다얏, 아그네스, 케네스는 각자 지점에서 30미터 전방에 연막탄 던져. 연막이 퍼지면 약진해서 연막 나가자마자 수류탄으로 제압하고, 케네스는 연막 뚫고 나가자마자 엄폐하는 지점에서 유탄발사기 화력 지원 부탁한다. 히다얏, 아그네스는 나랑 같이 순차적으로 접근하며 검문소의 씹새끼들을 제압한다.”

 “가디언 4는 가디언 1에 도착하면 포탑 사수, 운전수 제외하고 하차해서 가디언 알파랑 우리 VIP 싣고 중간에 막고 있는 SUV를 치워. 길만 뚫리면 가디언 1, 가디언 4 둘 다 스윙바이해서 우리를 싣고 국제학교까지 전속력으로 퇴출한다. 다들 입감했는지?”


  입감했다는 대답들이 여기저기서 들림과 동시에 나는 개척조 셋을 바라보며 수신호로 셋을 셌다. 연막탄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약 30미터 전방에 안착하고, 곧 치이익 하는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충분히 연기가 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약진!”, 하고 나는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눈 먼 총알이 연막을 가르고 날아와 피난민들의 차량 유리를 온통 으깨버린다.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30미터가 내 인생에 또 있었을까. 가볍게 유독한 연막이 폐부로 들어온다. 연막을 가르고 나가자마자 온통 소화기 사격이 쏟아진다. 곧바로 어느 주인 없는 세단 바퀴 뒤에 엄폐를 하고 옆을 보았는데 얼굴 반쪽이 날아간 열 살쯤 되었을법한 남자아이의 시체가 널브러져있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케네스, 1시 방향 검문 초소에 경기관총 사수!”


  동시에 40mm짜리 죽음 하나가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당소 가디언 4 알파. 가디언 4-2 전투불능! 오른팔에 맞았다!”

 “바운딩!”


  가디언 4의 보고와 동시에 자리에서 뛰쳐나간다. 10미터 전방쯤의 세단 뒤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미끄러지듯 몸을 숨기는 순간 총알이 자석처럼 날아와 방금 뛰어온 방향에 정차해있는 세단과 엄폐한 세단에 꽂힌다. 곧바로 사격 자세를 잡고 차 본네트 뒤에 몸을 숨긴채 사격을 시작했다. 히다얏과 아그네스가 차례로 약진해오자, 나는 다시 한 번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자리를 잡고 다시 사격을 시작하는데 드디어 놈들의 숫자가 대충 파악이 될 것 같았다. 족히 일개 중대는 되어보였다. 히다얏도 자리를 잡고 사격을 시작하고, 이제 아그네스가 그걸 보고 자리에서 뛰쳐나올 때였다. 제압했다고 생각했던 RPG가 어디선가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끔찍하리만치 정확하게 날아온 RPG는 달려가던 아그네스가 거의 도달한 차량으로 직행, 폭발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뒤집힌 차는 달려오던 아그네스를 그대로 깔아뭉개버렸다. “네일러, 케네스! 10시 방향에 적 RPG!” 하고 외쳐도 뒤늦은 외침일 뿐이었다. 뒤를 흘끗 돌아보니 연막이 걷히고 있다. 가디언 4의 인원들은 길을 막고 있는 SUV를 거의 치운 참이었다. 더 묶여 있으면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0시 방향의 수풀 뒤 약 500m즈음 떨어져 보이는 주택가 저 편에서, 척 봐도 불길해보이는 기운의 장정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검문소 차단기 뒤로는 중앙분리대를 떼 만든 듯한 콘크리트 블록 장애물 두 개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위협적으로 주변 공기를 찢으며 귓전을 스치는 총탄의 파공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저격수까지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잴 시간이 없었다.


 “가디언 1, 가디언 4, 당장 히다얏과 케네스를 픽업해서 퇴출바람. 저 개새끼들 증원온다.”

 “가디언 1에서 막 길을 뚫었다는 통보. VIP 태웠고 지금 출발한다.”

 “좋아, 네일러, 케네스, 히다얏 셋 세고 내가 검문소로 뛸테니 엄호 사격 해줘. 저 좆같은 콘크리트 덩어리 좀 치워보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감과 동시에 온 총탄이 나에게 집중되는 듯 하다. 자동차 차체에 맞으며 튕겨나온 쇳조각과 총알 파편들이 몸 여기저기를 스치고 지나간다. 근 백명 분의 살의가 나에게 집중되는 감각에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미친듯이 흐른다. 시야에는 터널 비전이 내려앉아 검문소의 콘크리트 블록 뿐이다. 분명 어느 순간 날아온 총탄 두어발이 입사각으로 들어와 방탄복을 때린 것 같았지만 고통은 압도적 아드레날린에 매몰되어버린다. 검문소와 나 사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은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당황한, 다급한 표정의 놈들이 보였다. 단발로 방아쇠를 세 발 당겨 정면의 두 놈을 쏘아 맞췄다. 총알이 한 놈의 뇌 속을 잔뜩 헤집으며 눈을 거꾸로 뒤집고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스친다. 다음 순간 수류탄 하나를 검문소 좌측을 향해 까던졌다. 구르듯 넘어지며 콘크리트 블록 뒤에 몸을 숨긴 순간 수류탄의 폭음과 함께 찢어지는 비명들이 귓전을 때린다. 탄창을 교환하는 순간 검문초소가 있는 우측에서 한 놈이 블록 뒤에 엄폐한 채 나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날카로운 전율이 척수를 훑고 지나간다. 놈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빈 탄창을 온 힘을 다해 놈의 얼굴에 던졌다. 이마에 탄창을 맞은 놈이 움찔한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새 탄창을 끼워 넣고 단발로 놈의 가슴팍을 향해 두 번, 머리를 향해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놈이 픽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콘크리트 블록 뒤로 넘어갔다. 검문 초소의 박살난 창문 위에 피곤죽이 된 기관총 사수가 걸쳐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에선 많이 맡아본 익숙한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났다.


  길을 막은 블록 뒤에는 블록을 얹어놓은 카트의 손잡이와 바퀴 고정 레버가 있었다. 고정 레버를 제 자리에 놓고 손잡이를 있는 힘껏 끄니 콘크리트 블록이 나에게 끌려오기 시작했다. 길을 막고 있는 블록 두 개 중 하나를 치우고 길을 따라 배치된 콘크리트 블록 뒤에 몸을 숨기고 아측 차량들을 보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뒤쪽에서 날아든 RPG가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날아든 RPG는 가디언 4를 간신히 비껴나가 그 앞의 트럭에 꽂혔다. 또 다른 RPG는 검문소 좌측에서 날아와 가디언 1 위를 스치고 날아갔다. 열기가 훅 밀려왔다. 이젠 우리가 지나온 교차로 뒤에도 이 개자식들이 깔린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머지 블록 하나도 끌기 시작했다. 블록을 얹어 둔 카트에 달린 작은 바퀴가 천천히 구르며 블록이 끌려온다. 어디선가 총탄 하나가 날아와 오른쪽 귓불을 스치며 귓불을 찢어놓았다. 곧바로 날아든 또 다른 탄이 허벅지 바깥을 스치고 지나가며 타는 듯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콘크리트 블록의 무게에 팔이 빠질것만 같았다. 나는 온 힘을 끌어 모아 괴성을 지르며 콘크리트 블록을 도로변으로 치워버렸다. 다리도 팔도 후들거렸다. 동시에 RPG 로켓 하나가 검문초소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검문소 옆 도로변 말라버린 수도에 주저앉아 헤드셋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가디언 3 알파다. …다들 수고했다. 정차하지 말고 전속력으로 국제학교까지 퇴출해. 배후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정차했다간 RPG 맞아 다 죽을 거다. 나는 시간을 좀 더 벌고 알아서 자력 퇴출하겠다.”


  무전 망에 잠깐 침묵이 흐른다.


 “…미안허다. 무운을 빈다.”


  네일러였다.


  등 뒤로 M-ATV 두 대가 고속으로 차단봉을 박살내며 지나가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온다. 그 엔진 소리와 바퀴의 마찰음, 차단봉이 아스팔트에 나뒹구는 요란한 소리에 기묘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점점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나는 콘크리트 블록 뒤로 몸을 낮추고 다가갔다. 소리가 적당히 가까워졌다는 확신이 든 순간 나는 콘크리트 블록 뒤에 엄폐한 채 상반신을 내밀고는 빠르게 사격을 시작했다. 우측에서 좌측 방향으로 전술 사격을 연습하듯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자 순식간에 여섯이 쓰러졌다. 나머지는 기겁을 하고 재빨리 도로 옆 둔덕과 검문소 콘크리트 블록, 피난민들의 차량 뒤로 숨어버렸다. 몸을 다시 숨기자마자 콘크리트 블록을 분해해버릴 것만 같은 기세로 총알세례가 쏟아진다. 지금 여기서 항복하면 좀 덜 아프게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실없는 고민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본 그때였다.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반짝이는 흰 연기기둥 하나가 솟아올랐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흰 연기 기둥을 꼬리로 매달고 안정적으로 솟구친 반짝거림은 마침 그 순간 안정궤도에 들기 시작한 불운한 오스프리와 만났다. 그리고 마치 화학반응처럼 붉은 점 하나를 하늘에 조용히 찍었다. 찰나의 순간 뒤, 폭음이 귓전을 울린다. 피격당한 오스프리는 중심을 잃고 뱅글뱅글 돌며 이쪽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모습에, 오스프리가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의 그 순간 나는 망연히 일어섰다. 오스프리가 지면에 충돌한다. 그 순간 뜨거운 돌풍이 온 몸을 휘감으며 질주하고, 온 사방으로 헤집어진 아스팔트와 흙의 잔해가 흩날린다.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돈다. 조각조각 박살나 온 사방으로 흩날리는 프로펠러와 오스프리 동체의 철제 잔해는 치명적 칼날이 되었다. 목적성 없는 칼날들은 하나하나의 죽음이 되어 인명을 도륙했다. 비현실적인 그 광경에 뒤를 돌아본 순간 프로펠러 잔해가 놈들 중 하나의 목을 치고 지나가며 그의 목을 허공으로 날려보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맹세컨대 그 순간 몸에서 분리된, 아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놀란 얼굴 속 눈이 꿈뻑이며 내 눈과 마주쳤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철제 비명을 질러대며 오롯이 나를 향해 밀려오는 오스프리의 동체. 죽음의 교향곡과 함께 질주해오는 오스프리에 의해 박살나 튕겨 나온 아스팔트 덩어리가 방탄판과 머리를 묵직하게 친다. 온 내장이 헤집어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폐부에서 미처 다 내뱉지 못힌 숨이 억지로 밀려나온다. 


  어느 샌가 나는 도로 위에 쓰러져있었다.


  새빨갛게 물든 희미한 시야와 정신 속에 다리가 보였다. 오스프리의 동체 밑에 완전히 깔려 뭉개진 무릎 밑 왼다리가.


* * *


 “손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보니 정장 바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끼 차림의 중년 남자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가슴팍 명찰이 눈에 띄었다. 운전수인가보다.


 “금일 운행 종료 시간입니다.”


  백일몽을 꿨나보다. 다리가 욱신거렸다.


 “아, 예. 죄송합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림과 동시에 버스는 뿌연 안개 낀 도로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버스 엔진음이 가시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추적거리는 이슬비는 여전히 도시 밤거리 위로 내리고 있었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자 폐부 가득 습하고 찬 공기가 가득 차온다. 흐릿한 기분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만 같은 그런 위안도 함께 차오른다. 숨을 뱉어내면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 새하얀 입김 사이로 비치는 빛의 잔상이 흐리다.


  돌이킨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이 다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나는 어째서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는지. 어째서 나는 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걸어온 오욕의 길을 정당화해온 내 자신이.


  가디언 알파에 대한 죄책감? 죽어가는 그의 창백한 피부 위로 피어나던 선홍빛 혈화(血花)와 그 목소리의 울림을 나는 잊지 못한다. 북한에서부터 함께했던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에 나는 목적을 잃고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 순간을 돌이켜보아도 페터슨이 죽던 그 순간 나는 슬퍼하고 있지 않았다. 얼떨떨한 상태로 압도적 폭력 앞에 감정은 짓밟혀 기능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생존본능과 훈련된 살인기술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을 뿐.


   이 모든 것은 다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분명 나의 총알에도 스러져갔을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예리하게 아리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갓 초등학교나 들어갔을 법한 여자 아이의 시체가. 이마에 구멍이 나있던 텅 빈 사내의 눈빛이. 그 남자 아이의 반쯤 날아간 얼굴이. 표도르, 첸의 마지막 순간은 내 의족 아래 찬 투명 족쇄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정말 다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어쩌면 하필 그냥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이 전부 지겨워졌던 것이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죽여 살아남는 삶이.


  현지인 사내는 미국으로 사라졌고, 나는 자연스레 회사를 나왔다. 그 사내가 정말 표도르와 첸, 페터슨,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비용으로 지불해가며 지킬 가치가 있던 사람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좋은 사람이긴 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어째서 내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였던 것인지도, 이 모든 것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지금 내 모습을 보자면 언젠가 본 적 있는 러시아 전쟁영화가 기억이 난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한 대사 하나는 분명히 기억 난다. ‘전쟁에서 생각이란 걸 하지 마.’ 라는 대사가.


  그렇다면 지금은? 나의 전쟁은 과연 끝났는가? 아니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쓸데없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전쟁이 끝났기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마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조중우호교에 태극기가 내걸리고, 금수산 태양궁전 앞에서 국군이 승전 기념 열병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몇 달 뒤에 나는 군대를 나왔다. 그때는 그저 방향을 잃은 듯 모든 것이 진빠지고 피로했다. 인민군 미사일 발사대를 날려버린다고 침투했을 때 마주쳐버린 하필 그때 산에 도망 온 어린 오누이를 쏴버린 일도 그랬고, 언젠가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쫓기던 와중 다리에 총을 맞은 페터슨 상사의 부하에게 소이 수류탄을 쥐어주던 순간 나를 응시하던 그의 눈빛도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추구하던 강함의 이상을 좇아 도달한 특수부대원이라는 커리어의 민낯이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그저 모든 것이 피로했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날짜까지 정해놓았던 나를 구한 것은 페터슨 상사였다. 그가 서울로 왔다. 전쟁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도록 말끔히 치워진 이태원,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이태원의 어느 술집에서 우리는 술을 나눴다. 둘 다 서로 별로 많은 말을 주고 받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한가지 제안을 했을 뿐이었다. 살 수 있는 제안을. 의미 따위는 없더라도,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유예시킬 수 있는 기회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자기혐오와 공허함의 늪에서 익사하기 직전 페터슨 상사가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감으로써 나는 그 모든 고통에서 자신을 유예하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것이 그저 미봉책이고, 돌려막기에는 이자가 붙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으면서.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인다. 습한 공기에 천천히 타는 담배의 진한 연기가 폐부 가득 들어오며 머리가 가볍게 핑 돈다. 담배 하나를 더 꺼낸다. 그에 불을 붙인 뒤 가만히 정류장 벤치에 올려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한 기점을 분기로 시간이 멈춘 채 그 뒤의 인생을 견뎌내는데 오롯이 인생을 바치며 살아간다. 인정 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리라.


  다리가 쑤셨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늦은 새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택시를 불러야할 것 같다.


  집이라.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에겐 아직도 집은 낯설고 불편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이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에도, 나는 돌아간다. 삶으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