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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방/소설

[단편] 검자줏빛 튤립

by 경계인 A 2018. 11. 6.


* * *


  여자의 몸으로 군에 몸을 담게 되기까지 배경에 별로 대단한 사연이 있지는 않았다.


  가정 단위의 평범한 비극은 세상천지 길가에 치이는 돌만큼이나 흔한 것 아닌가? 구태여 내 개인적 인생 역정에 대해 구구절절 넋두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나의 비극이라는 것은 딱 남들만큼의 평범한 비극이었다. 내 자신을 특출나게 불쌍하다 여긴 적도, 그런 시선을 달갑게 여겨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누가 물어보는데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얼버무리는 것은 어딘가 좀 떳떳하지 못해보이는 것 같아 나는 누가 가정환경에 대해 물어오면 간략하게나마 솔직히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 대부분 화들짝 데인 듯 어색하게 말을 돌렸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이 귀찮음을 덜어 편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 이웃집 총각과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뒤로는 본 적이 없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가출 뒤 술에 절어 지내시다가는 급성뇌출혈로 세상을 뜨셨다. 나는 중학교를, 동생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은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 보건데 그때의 나는 도리어 안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에 나타나 유산을 내놓으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어머니를 친구들 앞에서 마주해야하는 구질구질한 꼴까지는 보지 않을 수 있었기에. 나에게 어머니는 그저 그 정도의 존재였다. 무엇보다 그런 일이 없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팍팍했더랬다. 어머니는 행방불명이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애물단지로 전락한 우리 남매를 친할머니가 맡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할머님마저도 내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몇 개월 뒤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었다. 세상 천진한 표정의 동생과 카메라를 향해 어색하게 찡그리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애매하게 웃는 낯으로 꽃다발을 든 나. 그 모습이 담긴 졸업식 사진이 마지막 가족사진으로 남아버릴 줄은.


  동생은 머리가 좋았다. 친가 외가 모두 통틀어 특출나게 머리 좋은 사람이 없거늘,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인지 동생만은 학원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건만 유독 공부를 잘했다. 나 또한 국가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분류하는 집안의 자식치고는 공부를 곧 잘 했으나, 동생은 나처럼 평범하게 공부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 영재라고 불림에 손색이 없었다. 전형적인 문과 머리였던 나는 국어나 영어에 약간의 소질을 보였지만 동생은 분야 방면을 가리지 않고 머리회전이 빨랐다. 전교권을 놓치는 법이 없는 동생 녀석을 보며 살아생전 친할머니께서는 크게 될 녀석이라며, 우리 집안의 기둥이고 자랑이라며 그렇게도 예뻐하셨다. 알게 모르게 나와 동생을 다르게 대우하기도 하셨지만 그에 대해 할머니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할머니는 당신 삶에 짊어진 당신 분의 무게에 더해 아들과 손주들 분의 무게까지 오롯이 짊어진 채 남은 삶을 견뎌내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차신 분이셨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고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불행한 집들은 참 지독한 공통점을 하나 공유하니까 말이다. 가난이라는 지독한 공통점을. 우리 집에는 돈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망 보험금은 서울 끝자락 북한산 어귀 작고 낡은 단독주택값으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계약을 하는데 할머니가 12월 31일이 지나고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생전 우리 남매를 식충이 정도로 취급하던 친척들이 보호를 빌미로 가증스럽게 들러붙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물론 변호사가 할머님의 유언장을 낭독할 때 유언장의 내용을 듣고는 다들 울그락불그락하는 얼굴로 죽일 듯 나를 노려보았지만, 충분히 감내할만한 일이었다. 동생을 이런 더러운 자리에 데려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매매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찍으며 자신이 ‘할머니가 늦게 돌아가셔서 다행이다’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나는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계약서를 들고 나오는 길, 부동산 건물 계단에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었다. 부동산 건물의 거친 시멘트 계단 위로 눈물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음영 자국이 생겼다. 그 음영 자국에 어째설까 할머니의 죽음이 아프게 실감되서, 의지할 수 있던 유일한 온기가 식어버린 것만 같아서, 가슴 속 어딘가 베인 듯 아려오는 그 느낌에 나는 그 차가운 계단에서 계약서를 끌어안고 한참을 더 울었다.


  나는 몰라도 동생은 대학에 보내고 싶었다. 동생에게만이라도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각별하던 할머니마저도 없는, 의지할 곳이라곤 이제 나밖에 남지 않은 동생이었다. 그를 위해서 나는 강해져야했다. 하지만 운전면허 정도가 갖고 있는 국가자격증의 전부인 고졸이 떳떳하게 얻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해봐야 모두 견딜 수 없이 고되고, 박봉인 일들뿐이었다. 그 운전면허마저도 할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무언가 예감하셨는지 억지로 없는 살림에 따게 만드셨던 면허였다.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때였다. 우연히 닿은 시선 끝에는 육군 부사관 모집 광고가 걸려 있었다. 밝게 빛나는 커다란 광고판 속에는 단정하게 생긴 여군이 정복차림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 개월 뒤 나는 진녹색 정복 차림으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선서하고 있었다. 한 번도 나를 보호해준적 없는 국가와 국민에게.


  하사 계급장을 달고 전방 사단 수송대로 배치된 나에게 군대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여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알게 모르게 깔린 - 이미 사회에서도 지긋지긋하도록 겪어본, 그 비웃듯 깔보는 불신 가득한 시선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평탄치 못한 가정사가 나에게 준 한 가지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한 번 얕잡혀 보이면 끝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죽어라 노력했다. 대단한 애국심보다도 동생을 위해, 내 자신을 위해 군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하극상에 가까운 병사들의 뺀질거림에는 직무능력으로, 선을 넘은 하극상엔 규정대로 대응하는 본보기를 보여 통제력을 잡았다. 부사관 선배의 불편한 농담은 억지로 모른 척 웃어 넘겼다. 그렇게 아등바등 하다 보니 언제부터일까, 유일한 취미던 독서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부대 내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저 싫은 기억이고 억지로 했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군대는 처음으로 나에게 소속감을, 목적을 심어주었다.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로 되고, 나보다 더 큰 무언가가 나와 함께한다는 그 느낌. 제대로 느껴볼 수 없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군대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망 높던 수송대장님이 어느 날 당직근무 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커피와 간식을 건네며 나에게 고생이 많다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안다고, 요즘 직무 보는 것도 에이스가 다됐다고 말을 건넸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가 떠남과 동시에 나는 여군휴게실로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엉엉 울음을 쏟아내었었다. 입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한참 동안 그렇게. 차츰 고참 병사들이 나를 정중하게 따르기 시작했을 때, 거의 토악질을 하며 따라가던 자대의 뜀걸음이 슬슬 몸에 익기 시작했을 때, 수송대의 부소대장으로 임명 되었을 때, 선임 부사관들의 은연중 깔보는 그 태도가 엷어지기 시작한 때, 바로 그때 즈음 나는 고되지만 꽤 보람차다고, 이게 내 팔자에 점지 받은 천직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 * *


  동생은 그사이 무사히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명문대 중 하나에 진학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나간 휴가 때 동생을 끌어안고 나는 북적이는 신촌 거리에서 펑펑 안구까지 쏟아낼 기세로 울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쳐다보건 말건, 말은 ‘쪽팔리게 왜이래.’ 하면서도 목소리에 물기가 섞인 채 나를 달래듯 끌어안는 동생의 온기를 느끼면서. 그래. 말하자면 인생에 웬일로 볕이 드나 하던 그때즈음, 녀석이 내 인생에 나타났다.


  원래 배차계원 겸 부소대장차의 운전을 전담하던 문종국 병장의 전역일이 다가오며 새로운 운전병으로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오준환 상병이 배치되었다. 유달리 쾌활하고 붙임성 좋았던 그 녀석과 금세 친해진 것은 당연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알면 알아갈수록 녀석은 동생과 닮은 구석이 눈에 밟히는 데가 있었다. 당연스럽게도 동생보다는 한 살 많았어도 나보다 어리다는 점이나, 군입대 때문에 휴학을 해서라지만 아직 대학 새내기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가 눈에 밟힌 것들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대책 없이 밝은 구김 없는 성격, 묘하게 약고 삐딱한 태도이면서도 막상 하는 짓들을 보고 있으면 선량한 소시민적인 가치관이나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것들. 그런 모습들이 오준환 상병은 못내 동생과 겹쳐 보여 눈에 밟혔다. 아마 그 모습이 애교스러워 나도 그에게 다른 수송대 병사들보다 알게 모르게 마음을 쓰고 챙겨줬는지 모른다.


  녀석에게 가끔 밖에 나갔다 오며 슬쩍 편의점 음식을 던져주기라도 할 때면 녀석은 “오, 개이득.” 싱글벙글하며 입안에 일단 음식을 우겨넣고 보곤 했다. 입을 쉴 새 없이 오물거리면서도 어딘지 대형견을 떠올리게 하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이는 웃음을 얼굴 만면에 활짝 띄우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까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에게 종종 부식을 던져주곤 했더랬다. 녀석은 놀려먹을 때의 반응도 일품이라 소위 말하는 짬어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토라진 척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달래줄 때의 헤실거리는 그 표정이 재밌었다. 나중에가서는 부대개방 행사 때 녀석이 화장실에 간 사이 녀석의 어머니에게 개인적으로 감사를 받기까지 했으니 – 그때는 어쩐지 낯부끄러웠지만, 녀석은 나에게 그저 단순한 휘하 병사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평범한 초가을날, 세상이 뒤집혔다.


* * *


  불시에 시작된 포격이 불행 중 다행일까 포병대대 포상으로 쏟아졌던 탓에 내가 속한 수송소대는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필 그때 포병대대로 업무를 보러 갔던 우리 소대장이었다. 그의 공석으로 인해 나는 졸지에 수송소대장이 되었다. 며칠간 이어진 불의 장막과 인민군 특작조의 매복 속에서 내가 살아남은 것은 천운이 아니었나 싶다. 개전 3일 뒤 매복을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국도를 강행돌파 하던 때에는 깨진 차창으로 들어온 총탄이 헬멧을 치기까지 했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충격에 멍해있는 나보다도 도리어 전술차량의 악셀을 전속력으로 밟던 준환이가 더욱 기겁을 하며 욕지거리를 뱉어댔더랬다.


  죽음의 위협에 잔뜩 긴장해 선잠과 몽롱한 의식 사이를 바삐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은 1주 정도 계속됐다. 이후부터는 특작조의 매복도, 수송대를 노리고 날아드는 정밀한 포격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온 신경을 압도적 무게로 누르고 있던 죽음의 공포라는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며 생긴 공백에는 동생 걱정이 자리를 대신 메웠다. 들리는 바로는 서울에 화학탄 공격이 있었다는 것 같았다. 연락을 해보고 싶어도 부서진 휴대폰과 전시 신호관제 속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동생이 걱정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있는지도 모르겠는 신과, 돌아가신 할머니께 내 동생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전선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두 눈으로 마주하는 북한. 군에 입대할 때까지는 별 다른 생각도 없던 북한이었지만, 막상 두 눈으로 북한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은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었다. 마을을 지나칠 때면 꼭 눈두덩이가 기이하리만치 푹 꺼진 꼬마들이 굶주리고 꾀죄죄한 몰골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차량 행렬을 흘겨보곤 했다. 그런 때면 십중팔구는 꼬마들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화염이 미친 듯 혀를 날름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멀어져만 가는 사이드미러 속 그들은 강렬한 화염의 음영에 삼켜진 채, 자그마한, 마치 불에 타고 남은 덩어리들로만 보였다. 우두커니 선, 사람 같지 않은 자그마한 인영들의 흐릿한 실루엣은 어째설까 항상 위장을 뒤틀어왔다.


  전쟁의 참화가 할퀴고 지나간 난폭한 풍경과 대조되는 해방자가 되었다는 들뜬 분위기는 우리를 짓누르던 죽음의 그림자를 엷게하기에 충분했다. 그 기분에 취해서일까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병사들의 수도 점점 줄어갔다. 언제부터인가는 다들 제법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준환이도 그랬다. 아마 그때 즈음부터였을까, 이제는 병장이 된 오준환 병장, 아니, 준환이의 태도가 미묘해지기 시작한 것은.


  처음은 녀석이 내가 부적으로 지니고 있던 헬멧을 친 찌그러진 5.45mm탄의 탄두를 “김혜원 중사님 부적인데 몸에 꼭 붙이고 다니셔야죠.” 하며 내 인식표에 메달아 목걸이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구멍은 어찌 낸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녀석은 부대가 숙영이나 재정비를 위해 멈출 때면 꼭 얼마간 사라지곤 했다. 그러고는 항상 어디선가 기념품을 챙겨와 나에게 선물로 건넸다. 


  선탑자 자리에 앉아 임무나 자잘한 소요 사항들을 파악하고 있자면, 어느 순간 외출했던 녀석이 운전석 문을 벌컥 열고 “으으 춥다 추워.”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오곤 했다. 요란한 등장에 흘끗 녀석을 한 번 곁눈질로 흘겨보고 하던 일을 계속 하면 녀석은 배고픈 새끼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신경을 긁어댔다. 결국 무시하길 포기하고 “뭔 일있냐.” 하고 묻거나 하면, 녀석은 대뜸 마을 화단에서 꺾어온 김정일화니 동네 노동당 청사에 태극기 걸러 간 애들한테 얻어온 김일성 배지니 노동당 당원 배지니 하는 기념품들을 내밀어왔다. 필요 없으니 너나 집에 가져가서 자랑하라고 면박을 줘봐야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녀석이 글러브 박스 속에 기념품을 넣어 놓았기에 나는 녀석이 주는 선물들을 거절하길 그만두었다.


  연애 경험이 없다는 말과 바보천치라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다. 남자가 이런 식으로 관심을 표해올 때 그 뒤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가 짐작하는 일에는 굳이 동생만큼의 대단한 영재성 따위가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마 그가 전쟁터에서 끊임없이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인 만큼 잠시의 격정에 제 감정을 착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나가면 날 잊고 다른 여자를 찾을 거라고.


  그래서 사리원 회전 며칠 전 나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물자 적재작업 마무리 도중 이따금 저편 어딘가서 하늘로 솟구치는 예광탄 궤적을 눈으로 좇던, 이미 어둠이 차창 밖으로 살풋 내려 앉은 보랏빛 초저녁이었다. 포탑 사수 이민성 상병은 뒷자리에 앉아 쪽잠을 청하고 있었고, 통신병 박성준 일병은 잠시 야투경 배터리를 얻어온다고 자리를 비웠다. 그 당시 한 주 내내 샤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쪽잠만 자가며 이틀 밤을 연달아 샜다. 그 탓에 들여다본 룸미러 속 비치는 몰골은 길가에서 음식을 구걸하던 꽃제비들과 별 다를 바도 없었다. 준환이 녀석도 피곤한 탓일까 말이 없었고, 나도 멍하니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에 수놓아지는 예광탄의 불꽃놀이를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엔진의 배경소음과 엔진의 진동에 흔들리는 기어의 미세한 덜덜거리는 소리만이 차량 안에 감돈다. 마치 이 차만은 잠시 전쟁과 분리된 것 같은 이상한 단절감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흘끗 준환이 녀석을 보면 녀석은 피곤에 절은 눈으로 밖에 호위로 붙은 장갑차가 도로 진입로 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살짝 갈라지는 잠긴 목소리로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한테 너무 정 붙이지 마라.”

 “갑자기 말입니까? 김혜원 중사님도 가끔 보면 말을 참 차게 하십니다.”

 “진심이야.”


  그 말에 준환이의 얼굴이 조용히 굳어간다. 애써 다시 웃어 보이려고,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하는 그 모습이 애처롭다.


 “제가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화내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잘 못 들었습니다?”

 “네가 계속 운이 좋아서 까먹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전시란걸 잊지 마. 그제만 해도 보병 연대 쪽으로 붙었던 수송대 애들 여럿이 죽었어. 네 사적인 감정이 뭐든 간에, 지금은 너에게나 나에게나 안 하니만 못한 이야기야. 뭔가 할 말이 있거든 이 모든게 다 끝나면 하도록 해. ...당소 당악무장이라 알리고, 18시에 출발해야하니 적재 작업 미비한 부분은 후발대에게 맡기고 작업 마무리 바람. 이상.”


  타이밍 좋게 온 무전에 내가 답을 하는 내내 녀석은 멍한 표정이었다. 무전기를 내려놓는데 녀석이 씩 웃어 보이며 던진 녀석다운 농담에 그때의 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영화에서 보면 중요한 전투 전에 이런 얘기 하면 꼭 죽던데.”


  한 달하고도 보름 뒤 승전선언 다음날, 평양의 맥줏집에서 폭탄이 터졌다.


* * *


  승전 선언 며칠 뒤 휴가를 써 서울로 향했다. 평양에서 아무리 우편을 써보아도, 전파가 닿을 때마다 전화를 빌려 동생의 번호로 전화를 해보아도 동생이 받거나 회신하는 일은 없었다. 전쟁 도중 소대원들은 별 일 아닐 거라고, 아마 전시라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위로했었지만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돌아오는 12시간 내내 진정되지 않는 가슴이 미친 듯 뛰어댔다. 별 일 없을 거야, 괜찮을거야, 라며 되뇌던 주문은 텅 빈 집과 마주한 순간 너무나도 허망히 무너져 내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편함을 뒤엎어보니 우편이 와있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큰 병원으로부터였다. 모골송연한 불길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 불길한 감각은 끔찍하리만치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달음에 달려간 병원 중환자실 창 너머에는 의식을 잃은 동생이 있었다. 앙상한, 얼룩덜룩 흉하게 얼룩진 몸 여기저기에 기계가 매달려있는 동생이 있었다. 그 초현실적인 광경에 압도되어 의사가 무어라 하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크기가 가늠가지 않는 거대한 슬픔에 마비된 채 간신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나는 그 광경을 이해하려 애썼다.


  가슴 속 무언가가 크게 고장 나는 소리가 그 순간 들린 것만 같았다.


  동생은 개전초기 벌어진 화학전 도중 신경가스에 노출되었다. 불행 중 다행일까 혹은 지독한 악운일까. 동생은 죽지 않았다. 그저 피부 여기저기 끔찍한 흉을 남기고 신경계 다발 다수가 손상된 채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할 뿐이었다. 시체와 다름 없는 그의 모습에서 인공적으로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가슴만이 생명체로서의 그를 입증해내고 있었다. 


  그런 비극이 이 병원에만 수백의 같은 비극이 있었다.


  더 이상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어버렸다. 얼마 뒤 나는 군에서 전역처리 되었다. 그 내내 나는 북한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충격에 압도되어서일까, 전역 절차를 밟는 내내 조금 멍했다.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먼 나라 일 같았다. 내 삶을 걸었던, 나의 버팀목이던 군대가 완전한 타인으로 돌변한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소파에 앉았다. 앉았다기보다는 쓰러지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리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 힘겨워하며 소파에 파묻히듯 주저앉았던 보랏빛 저녁이었다. 가만히 소파에 몸을 파묻을 때였다. 문득 소파 앞 좌탁 위에 놓인 꽃이 눈에 띄었다. 참전용사증 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준환이가 만들어준 목걸이와 김정일화 책갈피였다. 


  언제 저기다 놓아두었던 것일까. 저 꽃은 얼마나 저기에서 숨죽이고 있던 것일까.


  나는 갈비뼈가 아파오도록 울었다.


* * *


  잠을 잘 수 없는 나에게, 자해를 반복하는 나에게 정신과 의사는 무슨 약인가를 처방해줬다. 나는 이 고통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만큼 용기 있지도, 자꾸 떠오르는 동생과 준환이의 얼굴을 배신할 만큼 무책임하지도 못했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졌다. 조금씩 정량보다 더 먹었다. 그때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해진 나머지 영혼마저 차갑게 식은 숭늉같이 밍밍하고 질척한 어딘가로 침전해가는 것 같았다. 참전용사 수당과 상이 수당의 대부분은 동생의 병원비로 입금 즉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병원비의 체납 고지서는 쌓여만 갔다. 하지만 약에 취해있을 때 만큼은 그것마저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약에서 깨면 지독한 현실에 오열하거나 자해를 하고, 다시 약으로 도피하길 반복했다. 6개월 뒤 나온 동생의 장애판정 뒤에도 참전용사 수당과 상이 수당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했다. 기초생활수급에 신청하려고 해보았지만 기각되었다. 재산 상에 등록된 뚜렷한 거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생명이 담겨있는 집이었고, 무엇보다도 언젠가는 깨어날 동생을 위한 집이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필사적으로 일을 찾았다. 하지만 몽롱한 정신 탓에 실수를 저질러 몇 번이나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그때마다 나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했다. 여름에도 손목의 흉을 가리기 위해 긴팔을 입거나 스포츠 밴드를 찼다.


  그렇게 3년이 갔다.


  어느 날 동생의 담당 주치의가 나를 불러냈다. 약기운에 취해 멍한 나에게 의사는, 이미 난도질 당해 더 꽂을 공간도 없다고 생각한 내 심장에 망연히 비수를 꽂았다.


  의사가 나에게 동생의 안락사를 추천했다.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깨어났을 때 병상 위였던 것 정도만이 어렴풋이 기억 날 뿐.


* * *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서라며 옛 부대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들과 옛 고통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그때 어째서일까, 아버지처럼 느꼈던 누군가가 바스라기 직전의 허물 같은 바랜 기억의 잔상이 아스라이 뇌리를 스쳤다.


  병원 로비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몇 시간 정도 로비를 서성거렸을까. 마침내 결심이 섰다. 나는 옛 수송대장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바뀌었기를 바라면서도 바뀌지 않았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심정으로. 몇 번일까 신호음이 갔다. 포기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여보세요?”


  목이 메어 무어라 목소리가 넘어오질 않았다. 간신히 쥐어짜낸 “수송대장님, 김혜원 중사입니다. 지금 뵐 수 있을까요?” 라는 말에 전화기 너머의 수송대장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찰나의 침묵 뒤 그는 별 말 없이 자신의 사무실 주소를 알려줬다. 그는 공인노무사가 되어있었다.


* * *


  엘리베이터 문을 나서 막상 그의 사무실 앞에 서니 덜컥 겁이 났다. 까닭 모를 두려움이었다. 손잡이를 향해 몇 번이나 손을 뻗었다 거두기를 반복했다. 안에서 기척을 알아차린 것일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처음 보는 말쑥한 젊은 사내였다. 엉겁결에 “죄송합니다!” 하고 도망치려는 순간 “혹시 김혜원 중사님 되시나요?” 하는 다급한 어조의 말이 그에게서 튀어나온다. 김혜원 중사. 순간 그 이상야릇한 느낌에 나는 얼어버렸다. 김혜원 중사. 김혜원 중사라고 불려본 것이 억만년과도 같이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다 끄덕일 때까지 아이를 달래는 듯한 조심스런 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양하지 마시고 들어오세요.” 하고 예의바르게 문을 열며 손짓했다.


  산뜻하게 정리된 사무실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젊은 사내 말고도 사무실에는 다른 여직원이 둘 있었다. 여직원들은 흘끗흘끗 곁눈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워 조금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앞장선 젊은 사내가 매끈한 원목 문에 똑똑 노크를 하니 “어, 들어와.” 하는 익숙한 - 그러나 기이하도록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린 문 너머에는 그가 있었다. 깔끔한 양복차림의, 포마드로 머리를 단정히 쓸어 넘긴 수송대장이.


* * *


 “차라도 한잔 하겠나?”

 “아뇨 괜찮습니다.”


  수송대장은 무언가 옛날을 추억하는 것과 같은 눈이었다. 어째서일까, 한 번도 혐오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가 조금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 미묘하고도 예민하게 다가오는 혐오감이 당황스러웠다. 응접 테이블 곁 소파에 나를 앉히고 그 건너편에 마주앉은 수송대장이 쪼르륵 녹차를 탄다. 청록빛으로 은연히 빛나는 자기 잔이 안정적으로 채워져 가고, 방안에 녹차향이 은은히 번져간다. 수송대장은 갑자기 찾아온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침착히 앉아있을 뿐이다. 무언가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흘끗 찻잔에서 시선을 들어 쳐다본 그의 얼굴은 어딘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는 신자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이상스럽게 가슴 어딘가가 끓어오르는 듯 했다.


 “수송대장님은 잘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나?”

 “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그가 들어 조금 홀짝인다. 목차를 한 모금 넘긴 그가 조용히 “글쎄.” 하고 읊조린다.


 “자네는 잘 지내나? 연락이 통 안 되어서 많이 걱정했네.”

 “수송대장님은 왜 그때 같이 안 오셨어요?”


  무심코 그를 찌르듯 충동적으로 튀어나간 말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컴퓨터가 조용히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그의 사무실 안에 맴돌 뿐이다. 눈을 얇게 내리뜬 수송대장의 단정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가 가만히 찻잔을 들어 녹차를 홀짝였다.


 “미안하네.”

 “뭐가요? 뭐가 미안한데요?”


  잘 모르겠다. 나는 무엇에 대해 그를 원망하고 있는 걸까.


 “혜원씨가 이렇게 분노 하는 것도 다 이해해. 하지만 일어난 일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끝난 일이야. 이제는 차차 극복해나가서 혜원씨 인생을…”

 “수송대장님은 거기에 없었잖아요!”


  머리가 띵하게 어지러울 정도로 부아가 치밀어온다. 시야가 빨갛게 변해오고 세상이 한 번 핑 돈다.


 “도대체 씨발 뭐가 끝난 일인데요!”


  손이 부르르 떨려온다. 심장은 귓전에서 뛰는 듯 하고 호흡이 가빠 숨이 막힌다. 혈관을 따라 퍼지는 아드레날린에 온 몸이 저릿거린다. 기만으로 틀어 막은 둑이 그 순간 무너짐이 느껴졌다. 마침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부터의 이야기가 날 것으로 쏟아져 나온다.


 “당신한테나 끝난 일이지 나한텐 아니라구요! 당신이 도대체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요?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나요? 말 해봐요. 네? 당신은 사단 본부에서 훈장 받고 있었잖아요!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구요! 그 숨이 턱턱 막히는 기억들! 그거 극복해보겠다고 진짜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고요! 그런데 안 되는걸! 안 되는걸 어떡하라고요! 뭐, 극복? 하! 병원에서 주는 약, 매일 같이 먹으란 정시에 먹었어요. 약 기운에 취하면 정신도 흐릿하고 하루종일 몽롱해요. 근데 제가 왜 그걸 먹었는지 알아요? 약기운에 취해 있으면 잊을 수 있으니까, 잘 수 있으니까. 그래서 몇 년을 그렇게 먹었다고요!”


 ㅡ 김혜원 중사님, 중사님은 전쟁도 끝났다는데 이제 뭐하고 싶으십니까?

 ㅡ 글쎄… 동생 대학 졸업 할 때까진 군대에 있어야겠지.


 “그런데 안 없어진다고. 이게, 이 거지 같은 기억이, 나한테 들러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고요. 당신이 날 이해해요? 하, 뭐, 이해? 이 씨발, 도대체 뭘 이해하는데? 당신이 거기 있어봤어요? 그 끔찍한 기분을 당신이 알아요? 누군가를 발판으로, 누군가가 날 위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다는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매분매초 느껴지는 그 기분? 자신의 존재 자체가 혐오스러운 그 기분을, 죄책감을 당신이 아냐고요. 애당초 이 전쟁은 내 전쟁도 아니었어요. 국가와 민족? 그 잘난 국가와 민족이 우리 엄마가 집 나갔을 때, 우리 아빠가 죽었을 때 도대체 나한테 뭘 해줬는데요? 싸우라니 싸웠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왜 내가 벌을 받고 있나요?”


 ㅡ 중사님… 아파요. 중사님 이제 와서야 말하지만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중사님 저 죽기 싫어요. 무서워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중사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중사님이랑 같이 서울로 돌아가서, 그땐 군복이 아니라 사복 입고 데이트도 하고 싶어요. 중사님이랑 영화도 보고 근사한 저녁도 먹고 싶어요. 저번에 말했던 거기 있죠? 서울에서 하남 넘어가는 워커힐 쪽에 있는 그 카페… 거기 중사님이랑 가보고 싶었는데… 중사님 무서워요. 추워요. 중사님, 왜 이렇게 춥죠? 중사님 괜찮아요. 울지마요. 괜찮아요. 중사님은 꼭 살아요. 꼭 살아야해요. 중사님 사랑해요… 김혜원 중사님…


  목울대가 통제 할 수 없이 울컥거린다. 터져나와 범람하는 그간 쌓여온 슬픔이, 억눌러온 슬픔이 마침내 흔적도 없이 그 모든 기만을 쓸어내버린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고통이 적절히 배합된 괴물과도 같은 무언가와 나는 마주한다. 흐느낌이, 아니 흐느낌을 빙자한 절규가 터져 나온다. 끔찍했다. 그 모든 것이. 전쟁도, 나도, 준환이도, 내 동생의 모습도, 맥주집의 그 소년도. 그 모두가 끔찍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나는 밀려오는 현기증에 철제 서류함과 부딪혔다.


 “나는 군대가 필요했고, 군대는 나를 필요로 해줬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 아닌 다른 누가 절 필요로 해줬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의미가 뭐였던지도 잘 모르겠어요. 나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아무도 남은게 없어요. 동생도 없고, 우리 소대원들도 없어요.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수송대장님, 이것에 무슨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나요? 저는 죽어 싼년이라 이런 일을 당하는 건가요? 전 뭘 위해 거기에 있던거죠? 전 뭘 잘못했나요? 동생은 가망 없는 식물인간이고, 내 전우들은… 소대원들은… 왜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네? 다들 어디 간 거죠? 대답해주세요 수송대장님… 거기서 나는 소대를 이끌었는데, 해방자였는데, 여기서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손 휘적거리는 게 다인 주차안내원일도 안 시켜주려고 한다고요!”


  수송대장님은 머뭇거리며 다가와 덜덜 떨리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애매한 미적지근함이 기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서류함에 기대어 서는데 다리가 풀렸다. 미끄러지듯 털썩 주저앉으며 서류함이 덜컥 거린다. 철해놓은 두꺼운 서류철 몇 개가 내 위로 후두둑 떨어지며 나와 수송대장을 친다.


 ㅡ 김 중사님, 오준환 병장이 있다가 일과 뒤에 딱히 일 없는 애들이랑 가볍게 맥주 한잔 때리러 가자는데, 중사님도 가시죠? 오늘 주둔지 당직사령님이 얌전히 21시까지만 복귀하면 봐주겠다던데요.


 “저도 저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단 말예요. 준환말이에요, 준환이… 걔 전역 2개월 남은 애였는데…”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는 하세요? 애들이 화장실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옆 테이블 꼬마애가 웬 배낭을 메고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쾅. 정신을 차려보니 준환이가 제 위에 엎어져 있어요. 근데 준환이가 멀쩡하질 않아요. 사람 같지가 않단 말이에요. 제 얼굴에, 제 얼굴에 걔 살점이 막 붙어있어요. 제 온 몸에 준환이 조각이… 준환이 조각이요… 그게 난 내 살인줄 알았는데…”


 ㅡ 술집에 왠 꼬마래요? 꽃제비인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도와주려고 했는데 계속 애 옆구리로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거에요. 귓가가 멍멍한데도 여기저기서 막 비명이 들려요. 정말, 진짜… 끔찍한 비명이었어요. 제 소대원들이 보여요. 아니, 소대원 조각들이었죠. 비명 지르는 애들은 운이 나쁜 애들이었어요. 주점 테이블 철조각, 의자 나뭇조각들이 걔들 몸에 다 박혀서는… 운 좋은 애들은 이미 육편 조각이 된 애들이에요. 걔들 조각이 온 천장에, 바닥에 들러붙어 칠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구역질나는 오징어 태우는 냄새….”

 “반쯤 몸이 으깨진 준환이가… 구하고 싶은데, 진짜 전 구하려고 했는데, 애가 제 위에서 위험하면서 안 비키려고 하는거에요. 온 몸이 박살난 애가요. 그러면서 막 입에서 피를 줄줄 뱉으면서 하는 말이 뭔줄 아세요? 집에 가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무섭다고… 준환이가 그랬단 말이에요. 사랑한다고. 제 위에 그렇게 쓰러져있는데 제 손등에 준환이 창자가 느껴지는거에요, 애가 말하는데 쿨럭일때마다 그 빌어먹을 창자가 막 제 손안에서 꿈찔거려요. 수송대장님 창자가 손에서 꾸물거리면 어떤 느낌인줄 아세요? 기름 묻은 풍선 비비는거 같아요. 막 뽀득거릴 것 같으면서도 안 뽀득이고 미끈거리는게요. 그게 진짜… 전 풍선이 토나오게 싫어요. 준환이는 그렇게 죽었어요. 그렇게 죽었다고요…”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수송대장님?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거죠? 왜 하필 저에요? 네? 대답 좀 해주세요… 제발… 왜 하필 전가요?”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말 없이 다가와 내 앞에 용서를 구하듯 무릎을 꿇어 앉은 그는, 웅크린 나를 안아 천천히 토닥였다. 그 어쭙잖은 위로에 매달리고 싶어져버려서, 그런데 그 위로에 매달려버리면 앞으로를 버텨내질 못할 것만 같아서, 나는 아이처럼 그를 끌어안은 채 엉엉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수송대장님 이게 다 뭐죠?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해요? 3년이에요 수송대장님. 3년이 지났는데도 약을 조금이라도 줄이려하면 악몽을 꿔요. 제가 어떻게 행복해질 자격이 있겠어요? 수송대장님. 저는 사람을 죽인거나 다름없단 말이에요. 저는 준환이가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준환이를 낭떠러지로 밀어서 살아 남은거랑 다를 바가 없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죽을 자격이라도 있겠어요? 제가 군대 간 이유였던 동생은 의사가 뭐라는줄 아세요?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안락사를 하재요. 어차피 국가에서 가망 없는 중상자가 많아서 이제 이게 합법적으로 허가가 났다고… 안락사를 하재요 수송대장님. 준환이가 저를 위해 죽은 것처럼 제가 죽어서 해결되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죽을텐데, 전 누굴 살리기 위해서 죽을 수도 없어요. 이제는 제 동생까지 죽이게 생겼어요. 난 지금까지 그나마 그걸 붙들고 살아왔는데. 수송대장님, 전 어떻게 살아야해요? 말씀해주세요 수송대장님.”

 “왜 저는 준환이를, 우리 소대원들을 구할 수 없던 걸까요? 왜 수송대장님은 그런 나를,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어요? 아니, 왜 나를 죽이지 못 하신거에요? 차라리 죽여주시지. 그때 3소대 대신 우릴 보병연대 쪽에 붙여주시지… 왜… 왜…! 왜 나를 살려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그렇게 통곡했다.


  수송대장님은 가만히 눈물을 흘리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주문을 외워주듯 조용히 읊조리며 내 등을 토닥였다. 위로하듯,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 속삭여주면서, 정말로 오랫동안.


  나는 수송대장님을, 옛 전우들을 찾으려는 시도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


* * *


  언젠가 군대에 있을 적 무료함에 집어 들었던 문학 비평서가 생각난다. 거기서 이야기하기를 고전문학은 흥미롭게도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죽음과 사랑을 밀접하게 엮어 묘사해왔다고 했다. 가장 유명한 예시로써 로미오와 줄리엣을 든 비평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그 사랑이 죽음을 통해서만 현실을 벽을 뛰어넘을 수 있던 가슴 사무치면서도 순결한 비극이었기에, 영겁을 관통하는 고전으로,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논했다. 뜨겁게 불타다 못해 자신의 생명까지 장작 삼아 오롯이 재로 화해내는 자기파괴적 사랑이 문학에서 묘사되는 모습은 자뭇 묘하다. 아름다움, 숭고함, 헌신, 아릿함. 그 순수한 연정과 자기희생으로 완성되는 비극은 죽음으로써 그 가슴 아린 순수함을 증명해내기에 비극을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해낸다. 죽음이란 존재의 단절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영속성을 창조하는 매개가 된다. 그렇기에 고전에서 죽음이 사랑과 결합되는 것이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순결한 사랑은 죽음과 함께할 때 가장 고결한 모습으로 표현되기에. 그렇게 비평서는 논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된 목적인 생존을 스스로 꺾어 완성하는 사랑이기에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라고.


  아니다.


  뜻이 숭고할지는 몰라도 그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질척거리고, 예리하게 아프고, 잔혹하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았다. 그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그 마지막 순간 희미한 의식으로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는 나를 구하기 위해 죽었다.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를 지키던 그가 마지막 숨으로 뱉어내던 사랑 고백에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죽었다. 산산조각난 몸뚱이를 가만히 내 몸 위에 뉘인 채. 그의 마지막 순간 내가 느낀 것은 그의 꾸물거리는 창자와 뜨겁고 끈적거리며 나를 적시는 피였다. 나는 그의 피로 내 몸를 씻어 새 삶을 세례 받았다.


  자주색 튤립은 ‘영원한 사랑’을, 검은색 튤립은 ‘당신을 저주합니다.’를 꽃말로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자줏빛 튤립을 그에게서 선물 받았다. 죽음이란 매개로 이어진 영원한 사랑과 함께 나는 그에게서 검은색 튤립도 선물 받았다.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 그가 죽었기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지고지순하면서도 이기적이었던 사랑을, 죽음으로써 완성된 그의 영원한 사랑을 나는 배신할 수 없다. 그의 사랑은 순수하고도 영원한 사랑이기에. 그의 죽음을 발판으로 살아남은 나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죽어서도 안된다. 나는 삶이라는 저주를 영원한 사랑이란 형태로 선물 받았다.


  그가 죽음 앞에서 속삭이던 영원한 사랑은 나의 가슴에 씨앗을 심어 검자줏빛 튤립을 꽃피웠다.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내 품안에서 끈적한 내장을 쏟아내며 죽어간 그의 사랑 고백의 음절 음절은 그 하나하나가 그의 마지막 숨결을 타고 영원한 속박의 씨앗이 되어 나의 가슴에 찍혔다.


  남겨진 사람으로서 나는 행복할 자격도, 그렇다고 이 고통을 끝낼 자격도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이다. 죽을 자격도,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도 없다.


  조용히, 가만히. 실바람 하나 없는 무채빛 황야에 홀로 선 나는 손아귀 속 나를 숙주 삼아 피어난 흑자색 튤립을 말없이 붙든 채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그냥 그렇게, 숨 쉬며.


*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