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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방/소설

[장편] 랑림군의 레토르트 영웅들 : 1564고지 ( 03 )

by 경계인 A 2017. 8. 2.

  ‘좆같은 얘기나 주절거리는 기자양반이 어인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는지?’를 ‘아 기자님 성함이 다시 어떻게 되신다고요? 아, 이우현 기자님. 이야, J일보! 민족 정론지 아닙니까 정론지! 우리 기자님 배우신 분이시네. 아유, 뭐 힘들게 짐을 이렇게 많이 들고 오셨어요. 어서 짐들 애들한테 넘겨주세요.’ 로 돌려 놓는데 필요한 것은 담배와 성인 잡지, 술, 그리고 고기였다. 본디 군인들이란 슬프리만치 만성적으로 욕구에 배고픈 존재들인 법이다.


  술과 고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자 몇 시간 뒷면 마침 저녁 시간이기도 하여, 기세를 타고 아예 바로 석식으로 고기 판을 까는 분위기가 되었다.


 “호준아.”

 “일병 권호준.”

 “소대장님한테 가서 여쭙고 와라.”

 “예.”


  권호준이라고 불린 까까머리 청년 하나가 곧바로 후다닥 신민우 중위를 찾으러 나갔다. 곧바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른 장정 둘이 일사분란히 내 짐을 받아든다. 아까 ‘하, J일보오오?’ 하고 나를 맞아주던 깔깔이 망토 청년은 그 사이 침상의 먼지까지 팡팡 털어내고, 어째선가 이것저것 들어있던 관물대에서 물건들을 촤르르 바닥에 내던져 대충 발로 밀어대며 자리를 정리하더니만 자리 하나를 뚝딱 마련해내줬다. 관물대에서 쏟아져 나와 바닥에 팽개쳐진 이런저런 잡지들과 잡다한 장구들을 보건데 내가 오기 전에는 아마 공용으로 쓰이던 것 아닐까 싶다.


  그제야 깔깔이 망토 청년은 깔깔이에 슥슥 손을 비벼 털더니만 ‘아이고 기자님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상병 이종훈이에요.’ 하고 인사를 건네 왔다. 넉살좋게 왼손으론 어깨를 두드리고, 오른손으론 악수를 청하며 들러 붙어오는 그는, 물 만난 고기마냥 내가 악수를 받는 것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목덜미에 화상이 있는 사내에게 ‘분대장임, 바비큐 그릴 꺼내올까요?’ 하고 묻고 나섰다.


  아까 신민우 중위를 찾으러 나갔던 까까머리 권호준 일병이 헐레벌떡 뛰쳐 들어왔다. 


 “소대장님이 고기 구워 먹는건 괜찮은데 석식은 잔반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하십니다!”

 “오케이. 호준아, 2분대 3분대한테도 가서 전파하고, 이종훈이 너는 보급계 가서 그릴 빌려와. 석식이랑 고기랑 같이 먹으면 되겠네.”

 “예이, 분대장임.”


  싱글싱글한 낯의 이종훈 상병이 내 짐을 받아들었던 장정들까지 대동하고 생활관을 나가고나니 그제야 생활관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마치 폭풍이라도 지나간 듯하다. 화상 자국의 청년이 어색히 자리에 앉은 나를 슥 곁눈질 하더니만 말을 걸어왔다.


 “뭐 현장 기사 같은거 쓰러 오셨습니까?”

 “아, 뭐... 예.”

 “이런 촌구석에서 쓸게 뭐 있다고. 얼마나 계시다 가시게요?”

 “잘은 모르겠네요. 일단 예정은 3주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오래도 있다가 가시네.”


  화상자국 청년이 관물대서 깔깔이를 꺼내더니, 다른 장병들과는 다르게 생긴 그의 셔츠 위로 깔깔이를 걸쳐 입었다.


 “여기가 한여름이라도 북쪽이라 해질녁부턴 꽤 공기가 찹니다. 뜨뜻한 옷은 좀 챙겨오셨어요?”

 “아... 예, 조금은요.”

 “자강도는 초행이십니까?”

 “자강도는 초행인데 평안북도는 전쟁 때 취재 때문에 와봤어요.”


  그 소리에 그가 코웃음을 한 번 가볍게 쳤다.


 “아니 전쟁 때 한 몫 잡으셨으면 됐지,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이런 촌구석까지 찾아 들어오셨습니까?”

 “위에서 까라면 까는거죠. 사람 사는 세상사는 뭐 어디나 다 비슷하지 않나요?”


  그 말에 ‘기자님 이거 재미나신 분이시네.’ 하고 그가 씨익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어...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허상엽입니다. 여기 1소대 1분대 분대장입니다.”


  창문 밖 어디서 시동 소리가 난다 싶더니 얼마 안가 이종훈 상병이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싱글거리는 낯으로 그가 ‘실례합니다잉.’ 하고 내 짐을 뒤지더니만, 알아서 고기가 든 아이스박스와 노끈에 묶인 맥주 박스를 제것 마냥 찾아 양손에 들었다. 그러더니만 나를 보고 싱글거리는 낯으로 ‘가시죠.’ 하고는 앞장을 선다. 그 기분 좋은 기세에 휩쓸려 따라 나가니, 아까 신민우 중위가 부대 투어를 해주며 보여준 간이 차고에서 - 위장포를 친 천막에 가까웠지만, 전술차량이 빠져나와있다. 차를 빼 생긴 자리에는 바비큐그릴과 둥그런 간이 플라스틱 상이 이미 차려져 있고, 몇인가가 그릴에 달라붙어 불 피우는 일이 한창이었다. 


  그 어마무시한 추진력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니 근데 저 쌈채소들은 어디서 난겁니까?’ 하고 이종훈 상병에게 물어보니, 허상엽 하사가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는 휘적거리는 폼으로 스쳐지나가며 ‘어제 제육볶음이랑 나왔다가 남은 쌈채소 일겁니다.’ 하고 일러왔다. 이종훈 상병이 그 소리에 ‘취사장 애들이랑 맥주로 딜 좀 쳤죠.’ 하고 킬킬거렸다.


  고기가 나왔다는 소식은 그새 온 소대에 퍼진건지 1분대뿐만 아니라 소대장 신민우 중위를 비롯한 소대 본부 이하 1소대 생활관 전원이 식판에 밥을 받아든 모습들로 어슬렁어슬렁 어디선가 나타났다. 


  밥을 먹던 왼손에는 식판을, 오른손에는 나무젓가락을 쥔 신민우 중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눈이 마주치니 한번 가볍게 목례를 해올 뿐이었다. 엉겁결에 나도 끄덕하고 목례를 했다. 불판에 몰려드는 장병들을 보건데 넉넉히 열 근에다가 덤을 좀 얹어 사오길 참 잘했다 싶다. 돈은 꽤나 깨졌다만, 액막이 복채 같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회사 돈이니까.

  타 소대 소속인 듯한 장정 하나가 정신없이 고기를 집어먹는 이종훈 상병 옆에 은근슬쩍 다가왔다.


  그릴 위에 삼겹살이 올라가며 치이익, 하는 식욕을 돋구는 맛있는 고기 익는 소리가 나고, 고기가 익으며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콧잔등을 자극해왔다. 이미 식욕이 잔뜩 오른 1소대 장병들은 불판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고기를 바라보며 젓가락으로 고기를 휘적이는데, 이런 광경은 뭉게뭉게 번져나가는 고기 굽는 연기와 함께 마침 밥 때에 맞춰 생활관을 나온 타 소대 장병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 이종훈이 이놈아, 니 입만 입이냐. 냄새만 풍기지 말고 한입만 좀 주십쇼, 우리 동기님.”

 “응 엿이나 까 잡수세요. 느그들끼리 냉동 회식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친한 척이세요. 출타 때 낭림읍내 나가서 사비 털어 사오시든가. 우린 기자님이 사주시는 거거든?”

 “와 진짜 이종훈이 이 쪼잔한 새끼 이거, 인성 봐라. 냉동이랑 삼겹살이랑 같냐. 동기끼리 너무하네. 야, 박정하다 박정해.”

 “야, 알았어. 내가 인심 썼다. 거 새끼 사내새끼가 존나 찡찡거리네. 니네 막내 춤 시켜봐. 춤. 춤 잘 추면 내가 너네 분대 한 점씩은 줄게. 아님 니가 추던가.”


  그 소리에 옆에 있던 생활관에서 보았던 장병이 장난조로 볼멘소리를 내왔다.

 

 “이상병님, 춤보다 더 큰걸 달라고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기자님이 평양에서 고생시럽게 사오신 고긴데.”

 “얼레? 새꺄, 술과 고기가 있으면 춤이 있어야지 춤이. 하여튼 짬찌새끼 뭘 몰라요. 어휴, 상호야아, 박상호 이놈아아, 니가 그래서 짬찌인거야 임마. 아, 그래. 말나온 김에 너랑 호준이가 중대장님하고 중대간부님들한테 고기 좀 전달해드리고 와라.”

  

  이종훈 상병에게 장난을 걸었던 분대 막내로 보이는 박상호라는 이름의 장병과 옆에 서있다가 봉변을 당한 권호준 일병은 엉겁결에 혹을 붙인 꼴이 되니 온통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신속히 빈 식판 하나를 가져와 착실히 고기와 쌈장 등을 정갈히 담는 그 모습이 참 애처롭다. 2소대와 3소대의 일부 장병들도 1소대에 연이 있는 장병들과 거래들을 해가며 각개전투로 그날 저녁 고기를 얻어먹었다. 그저 고기를 거의 얻어먹지 못한 타 소대 막내들만 입맛을 다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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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강 맥주와 함께한 고기 회식은 1소대 장병들에게 나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남기는데 매우 주효했던 듯 했다. 다들 고기가 뱃속에 적당히 들어간 뒤 올린 신민우 중위의 환영 건배사 직후에는 대학 졸업식 때도 받아보지 못한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가히 영웅 취급이다.


  2분대와 3분대가 뒷정리를 맡게 되고, 1분대와 나는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배불리 먹고 생활관에 돌아오니 이제는 계급 낮은 분대원들이 생활관을 청소하는 동안 이종훈 상병을 위시한 계급 높은 분대원들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가 이어졌다. 결혼은 했느냐, 여자 친구는 있느냐, 왜 없느냐, 그럼 전 여자친구는 있을거 아니냐, 예뻤느냐, 사진 있느냐, 빨리 이리 폰 내봐라. 뭐 이런 것들 말이다. 2분대와 3분대가 우르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뒤 공교롭게도 당일 당직사관인 소대장 신민우 중위가 1소대 생활관의 저녁 점호를 봤다.


  점호는 꽤 간소했다. 신민우 중위가 무심한 목소리로 생활관 정돈 상태 몇 가지를 지적하고, 인원 보고를 받고, 복무신조를 복창하고, 몇 가지 전달사항을 전파하고, 10시까지 취침 소등하라는 통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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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지금. 11시 반이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은데,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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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시 45분 즈음 야간 경계 근무 첫 번째 시프트로 뽑힌 이종훈 상병과 최지훈 일병이 1분대 생활관을 나서고, 15분 뒤 박상호 이병의 ‘소등하겠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생활관의 불이 꺼졌다. 왁자한 수다를 예상했건만 몇 마디 농을 주고 받는 정도로 침대맡 수다는 끝났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낮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찌르르, 찌르르’ 하고 우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생활관 천장에 붙어있는 선풍기가 미풍으로 돌며 내는 로터의 회전음만이 희미하게 웅웅거린다. 


  잠을 자기에는 썩 괜찮은 환경이었지만, 서울에서 올빼미 생활을 지속하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갑자기 노출된 것이 원인일까,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그렇게 뒤척이기가 한 시간 반은 지난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생활관에 들어왔다. 슬쩍 몸을 일으켜 보니 옆 소대 불침번 같았다. 가만히 보니 누군가를 깨우고 있었다. 하나는 이미 깨서 침대에 앉아 있다.


  얼마간 실랑이를 한다 싶더니 마침내 어둠 속의 인영이 일어났다. 나도 차라리 경계근무라도 따라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몸을 일으키니 ‘시발 깜짝아.’ 하는 낮고 다소 격한 반응이 저쪽서 날아온다. 다가가보니 아까 내 전여자친구의 사진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던 송윤택 상병과 박상호 이병이었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송윤택 상병이 나에게 묻는다.


 ‘잠 안와요?’

 ‘잘 안 오네요. 경계 근무 따라가봐도 됩니까?’

 ‘...따라 오세요, 사관님한테 물어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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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직사관으로 있던 1소대장 신민우 중위는 내가 경계 근무를 따라 가보겠다고 하니 좀 마뜩잖은 기색인 듯 했다. 그날의 당직사령인 중대장 김백현 대위는 오히려 시원스럽게 '아 물론요, 기자님.' 하고 부추기고 나섰지만 말이다. 그 모습에 신민우 중위도 결국에는 ‘제발 사고는 치지 마십시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직병인 권호준 일병은 어디선가 ‘Press 언론’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방탄복과 검은 방탄 헬멧을 가져왔다. 권호준 일병의 도움을 받아 채비를 완료하고 나니, 송윤택 상병이 서두르라고 채근이다.


  야투경을 쓴 송윤택 상병은 연신 하품을 해가며 아무 말도 없이 어두컴컴한 영내를 앞장서 걸었다. 나는 송윤택 상병 뒤를 따라가는 박상호 이병의 꽁무니를 쫓아 걸었다. 얼마간 걸었을까, 어둠 어딘가 흐릿하게 더 짙은 음영이 보인다. 아마 저곳이 초소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금새 위쪽에서 '정지, 정지, 정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어와 답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간략하게 진행됐다. 


  신원확인이 끝나자 이종훈 상병의 노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끼들 겁나 늦네. 빠져가지고. 수고들해라잉"


 ‘좆까 새끼야. 개꿀 1번초 걸려놓고 생색은. 가 자람, 마.’ 하고 대꾸하는 송윤택 상병에게 이종훈 상병은 그저 낄낄거리고 만다. 초소에 우리 셋이 들어가니 그는 수고하라는 듯 손을 한 번 휘적이고는 부사수를 데리고 초소를 빠져나갔다.


  초소 안으로 들어가니 부대 내에서는 헤스코 방벽 때문에 뜨문뜨문이나 보이던 산 아래 풍경이 한 눈 안에 탁 트여 펼쳐졌다. 비록 내려 앉은 어둠에 잠겨 세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산 아래 저기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무언가는 분명 전깃불이었다. 마을이다.


 “저게 우리 관할인 연화립니다.”


  멍하니 산 아래를 빤히 바라보는 나를 흘끗 본 송윤택 상병이 말했다.


 “전깃불이 들어와있네요?”

 “얼마 안 됐어요. 게다가 저거 얼마 정도는 중국에서 사오는 전기일걸요.”

 “여기 수력발전소가 근처에 있지 않나요? 그걸론 모자라요?”

 “북한 인프라가 좀 그지 같아야죠. 그거 아직도 수리다, 교체다, 돌다가 안 돌다가 그래서 지금 대대적으로 손 보고 있을거에요.”


  그가 ‘치익-’ 하고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뿌렸다. 여름임에도 바람이 조금 쌀쌀했다. 산골짜기 한복판에 있으니 좀 쌀쌀하겠지, 하는 생각에 챙겨온 방탄복 아래 얇은 바람막이가 참 다행이다 싶다. 그래도 팔에 느껴지는 한기에 슥슥 양팔을 비비니 송윤택 상병이 ‘깔깔이라도 하나 얻어다 드릴까요?’ 하며 씨익 웃는다.


 “기자님, 하늘 한 번 올려다보시죠.”


  별천지였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새카만 밤하늘을 캔버스로 은은히, 그리고 화려히 빛나는 별빛의 은색 유화가 유려히 수놓아져 있다. 서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절로 탄성이 나오는 압도적인 원초적 아름다움이다. 


 “살기 거지 같은 동네니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죠.”


  송윤택 상병이 자조적인 투로 읊조리는 말이 기분 좋다. 때마침 불어와 뺨을 훑는 바람이 기분 좋게 서늘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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