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공방/소설

[단편] 흥남 그 이후: 전직 스파이의 회고

by 경계인 A 2018. 6. 8.

* * *


  당신네들이 '흥남 참사'라고 부르는 그거 말이죠, 우리네는 어떻게 부르는 줄 알아요? '흥남 상륙작전'이라고 불러요. 어쨌거나 그 지옥에 상륙한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깃발을 꽂았다 이거에요. 작전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영웅적 희생을 통해 달성한 영광스런 승리 아니겠어요?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당신네 미국인들하고 우리는 같은 민주사회여도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거에요. 당신네들이 '국화와 칼' 읽으면서 옛날에 일본 놈들 이해해보려 한 거 같이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명 차이 때문이랄 수도 있고, 아니면 2차한국전에 얽힌 심정적 이해관계 수준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유야 뭐 갖다 붙이려면 얼마든 많겠지만 어쨌거나 핵심은 뭐냐면 거 옛날에 걸프전 직전에 후세인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당신네 미국인들은 1만 명의 사상자도 못 버티는 사회라는 그 말 그거. 우리네랑 당신네랑 똑같은 사건을 부르는 방식의 차이만 봐도 그 말이 맞고.


  싱가폴서 북미정상회담하고 나서 김정은이랑 그쪽 대통령이랑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서 투샷 찍고, 종전 선언한다 뭐다 한창 분위기 좋을 때 말이에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에 변화가 없어요. 싱가폴 말고 판문점에서 회담해야 했다고.


  남북정상회담 하고 나서 분위기 풀리니까 김정은이가 실제로 숙청한 군부 장성 숫자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네, 뭐네 하는 소리들이 나돌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수끼리 까놓고 말합시다. 솔직히 우리 쪽 업계 사람들은 그거 듣고 코웃음 쳤고, 위성정보야 우리가 구걸하는 입장이었어도 휴민트 정보는 당신네도 우리한테 의존했으니 랭글리선 똑같이 코웃음 쳤을 거요. 김정은이 집권하고 고사포한테 격추되거나 사냥개들 뱃속으로 들어간 별만 수백 개에요.


  김일성 위광찬란한 백두혈통이네 뭐네 해도 사람은 어차피 생존이 최우선이고 살려면 간사하게 생겨먹을 수밖에 없는 법이죠. 자기 모가지가 불안하다 싶으면 비슷한 처지끼리 동조하는 게 당연한 노릇이지. 김정은이가 밖에서 보기에는 또라이 같은 새끼여도 사실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아주 유능한 새끼였어요. 그러니까 그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지 자리 지켜서 죽어도 이건 절대 안 된다고 그간 애지중지 붙들고 있던 핵까지 경매 상품으로 들고 나온거지. 얘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 이런 판국에서 김정은이가 힘을 존나게 실어준게 평양방어사령부 애들하고 호위사령부 애들이에요. 각각 수도를 지키는 집단과 개인적인 무장친위대란 말이죠. 옛날 그 동독 슈타지랑 비슷한 역할이던 보위성 애들도 쳐낼 놈 쳐내고선 좀 챙긴 모양인데 아무튼 평방사나 호위사 애들한텐 못 비해요. 김정은이는 아버지한테 이어받은 공화국의 생리를 정확하게 이해한거에요. 북한이 곧 평양이고 평양이 곧 북한이라는걸.


  이게 어찌어찌 한동안 먹히는 듯 보였단 말이죠. 군부의 보수적인 노인네들은 다 쫓아내버리거나 죽여 버리고, 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싶은 놈들은 본보기로 찍어서 죽여 버리거나 한직으로 내쫓아버렸으니 당연하죠. 좀 반항심이 있는 놈이라도 까마득한 선배가 위원장 동지 말하는데 좀 졸았다고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히 대들 생각을 하겠어요? 자기가 기저귀 차고 다닐 때부터 군 생활 해온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 체제 2인자까지 고사포에 육편 조각이 나는 마당인데.


  근데 그건 표면상의 얘긴거고 내막을 들여다보면 또 얘기가 달랐다 이겁니다. 기자 양반이 그 입장이 됐다손 치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기자 양반이었다면 순순히 자존심 다 죽이고 '아 무섭다, 그냥 조용히 굴종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겠어요? 군인이란 족속들은 말이죠, 다들 정도는 달라도 어느 정도는 명예를 먹고 살아요. 특히 좀 젊은 놈들일수록. 어떤 측면에선 굉장히 멍청하고 비합리적인 족속들이란 말이죠. 그런데 얘들 입장에서 얼마나 치가 떨리고 굴욕적이겠어요. 나는 한 평생 체제 모순을 애써 모른 척 해가며 공화국 수호와 조국해방이란 기치에 투신한 엘리트 장교인데, 애비 잘 만난 같잖지도 않은 새파란 어린놈의 새끼 명령 한 마디에 존경하는 선배 동료들이 진짜 문자 그대로 갈려나가면. 그런데 이제는 자기네가 말로 다 못하는 희생을 감수해가며 완성한 핵능력까지 미제놈들한테 장사해먹겠대요. 김정은이 속내가 실제로는 어땠는지 이들이 알 방도가 있나요? 없죠. 그저 군인으로서 울분에 잠이 안 오고, 치가 떨리고, 억장이 무너질뿐이었겠죠.


  그런데 완벽한 기회가 온 거죠. 북미정상회담이란 완벽한 기회가.


  나는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회담 전부터 회담까지 온 회사가 당연하게도 비상 스탠바이 상태였죠. 회담 끝나고 티비에서 성명문 발표할 때 선배랑 동료 직원 몇 명은 울었어요. 저는 그때 직원 식당에서 동료랑 밥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저도 솔직히 좀 울컥했죠. 우리 과장님이 제일 많이 울었어요. 과장님 아버지가 해주 실향민 출신이셨는데 성명 발표하기 2주전에 돌아가셨어요. 과장님은 이쪽 업계에서 꽤 오래 구른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닳고 닳아서 감정표현도 별로 없고 술 마실 때나 좀 인간미 있어지는 분이셨는데, 그런 분이 엉엉거리면서 우는걸 보니까 저도 마음이 되게 그렇더군요. 싱숭생숭하니.


  어쨌거나 성명문 나오고 거의 동시에 우리 VIP도 환영 성명 냈죠. 당연히 회사 분위기는 끝내주고... 다들 일할 맛났죠. 회사 특성상 회담 끝났으니 오히려 더 바빠질 일만 남았었지만 그래도 진짜 우리가 조국에 기여하고 있구나, 새 시대가 열리는구나 하는 그 공기에 다들 피곤한지도 몰랐어요. 다행증 환자들 같았죠. 스파이들이 그러면 안됐는데.


  결재 올려야하는 보고서 제가 맡은 파트 퇴고 마치고 보내니까 긴장이 풀려서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었죠. 그런데 누가 절 막 흔들어 깨우더군요. 그때 한 이틀 만에 처음 눈 붙이던 참이라 엄청 짜증내면서 깼죠. 깨니까 눈앞에 가뜩이나 피부 흰 걸로 유명하던 입사 동기가 무슨 저승사자마냥 핏기 하나 없이 질려있더군요. 그 얼굴 보고 직감했죠. 뭔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구나.


  그때 핸드폰 보고 김정은이 전용기가 격추된걸 알았어요. 진짜 울고 싶더군요.


* * *


  그래요. 그 다음은 기자 양반도 아는 대로죠. 걔네 군부 세력 일부가 작심하고 쿠데타 일으켰어도 워낙 김정은이 주기적으로 조져 놓았었던 게 군부라 평양을 일거에 제압할 힘이 없었어요. 게다가 쿠데타 일으킨 애들도 90년대 6군단 사건에서 배운 게 있어서 소수 정예로 보안 철저하게 해서 저지른 거란 말이죠. 거사는 성공했는데 확실한 자기편이 당연히 부족했죠. 걔들 딴에는 지들이 들고 일어나면 다들 동조할 줄 알았던 거예요. 병신 같은 놈들. 확실히 이긴다는 확신을 처음부터 줘야 지들한테 가서 붙지. 아예 확실히 해버렸으면 오늘 같은 사단도 안 났을거에요.


  한편으로 호위사, 평방사, 그 외 김정은 동조 세력은 걔네 나름대로 영원할 것 같던 자기네 머리가 한 큐에 잘려버리니까 충격과 공포에 빠져 마비되어버렸죠. 김정은에 김여정에 하여튼 김정은 정권 최주요 인사들 반 이상은 그 미사일 한 방에 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 마비도 잠시고 전용기 격추 24시간 안에 북한 전역으로 아귀다툼이 번졌죠. 그리고 곧 내전의 승리 조건이 명확해졌어요. 핵, 생화학무기, 평양.


  호위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소위 '충성파'가 당신네랑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손을 뻗어온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자기네가 정통성이 있고, 협정은 유효하니까 자기네를 도와달라. 우리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당신네 수장은 노벨 평화상 받을 기회 날아가서 노발대발한 상태였고, 우리네 VIP는 이 개판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어도 판이 엎어졌죠. 게다가 당신네가 군사적으로 뭐 하겠다 결심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요. 좋던 싫던 국경까지 맞대고 있으니 이 진창에 발을 넣을 수밖에 없었죠.


  아까 말한 24시간은 진짜 눈썹 휘날리게 지나갔어요. 아웅산 테러 이후 처음으로 데프콘 쓰리를 발령한다 싶더니, 이게 한 번 올라가기 시작하니 가속도가 붙어 투까지는 휙휙 올라가더군요. 그 와중에 NLL에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NLL 남쪽으로 충성파 애들이 넘어 도망오고, 쿠데타 애들은 그거 잡겠다고 따라 내려오는 거 막는다고 나간 우리 초계함에 냅다 지대함 미사일 갈겨서 진돗개 하나 발령 나고... 아마 걔들은 우리네가 지들이 들고 있는 핵탄두 하나하나가 어디 있는지는 모를 테니 아예 세게 나가서 불확실성을 키우는 게 생존에 유리할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걔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최소한의 명분과 정당성은 확보해야했는데 그게 70년 내내 부르짖던 '남조선 해방' 밖에 없었거든요. 일종의 고슴도치 전략이었죠.


  먹혔을지도 모르는 전략이었죠. 그때 당신네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격추 이후 24시간 동안 온갖 채널에서 정보가 감당할 수 없이 홍수처럼 쏟아지더군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만큼요. 특히 중국 출장 나간 팀들한테서요. 최중요 정보는 핵의 소재였죠. 걔들이 가지고 있던 핵 중에 한 70%는 대충 어디 있는지 파악이 됐는데 나머지 30%를 모르고 있었어요. 그때 랭글리하고 당신네 공군은 당신네 대통령한테 위성사진 들이밀면서 쿠데타 세력이 갖고 있는 핵 소재는 99% 파악했고 100% 제거 가능하다고, 나머지 1%도 지들끼리 치고받다가 알아서 박살내거나 노출시킬거고, 그때 파괴하거나 회수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었다면서요? 우리는 통보 받는 입장이었어서 몰랐죠.


  언제 전쟁이 나는걸 확신했냐고요? 저는 분석관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펜대죠. 물론 회사 지원해서 전입오기 전에는 전방 수색대 소대장으로 구르기도 했고, 회사 전입 와서는 온갖 특수훈련이란 훈련은 다 받긴 했지만 어쨌거나 펜대였단 말이죠. 현장에서 정보를 가져오면 그걸 씹고 뜯고 종합하고 분석해보면서 정보의 신뢰도, 중요성을 판별하는게 제 주요 업무였죠. 사람도 잘 관찰할 수밖에 없고, 좌판 깔 수준이었죠.


  격추 다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얼추 36시간 지났을까 피곤에 절은 채 간단하게라도 아침밥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갔죠. 어느 정도 들리는 얘기로 감은 잡고 있었는데, 거기서 옆 부서 김 전무 표정을 보고 확실히 직감했어요. 아, 전쟁이구나.


  한 시간 뒤 계엄령이 발효됐죠.


* * *


  한미연합군이 대대적 통합 화력으로 저쪽 애들 주요 표적 박살내고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이후로 온갖 에피소드가 다 있는데, 기자 양반이 궁금한 건 흥남 얘기겠죠. 그러니 흥남 얘기나 해봅시다.


  흥남 상륙은 준비 기간도 준비 기간이었지만, 일단 그 기획이나 의도부터가 다분히 날림이고 정치적이었어요. 북한 애들끼리 드잡이질 하는 거를 편들어서 참전했는데도 개전하고 생각보다 피해가 막심했죠. 일단 한미연합군, 주로 당신네 미국인들이 동요 세력까지 죄 적으로 간주해버리고 때려서 적 저항이 거셌던 것도 있는데, 뭐 기자 아가씨는 다른 얘기를 듣고 싶으신거겠죠. 아무튼 그래요, 포병. 포병 얘기를 해봅시다. 저쪽 포병세력을 '1주' 안에 '전투 불능화'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해대던 건 '1주일 안에는 제거 못한다.'라는 말장난이란 건 이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협상하자고 타진하던 쿠데타 세력은 수틀렸다 싶으니 남쪽의 전쟁의지를 꺾고 마비효과를 노려볼 요량으로 그 장사정포 방향을 북쪽에서 남쪽으로다 돌려 화학작용제를 꽉꽉 충전해 뿌려댔죠. 


  군사행동 개시하고 첫 12시간 안에 나온 민간인 사상자가 얼추 10만이었어요. 군 사상자는 그 오분의 일도 안됐는데.


  게다가 아무리 방공자산으로 요격한다고 쳐도 작정하고 남은걸 긁어모아 탄도탄을 뿌려대는데 그걸 모조리 걷어 낸다는건 공상과학의 영역이죠. 저기 K-2나 오산AB 같은 데에 작용제 뿌려지고 전방 비행장이 산발적으로 마비되고 하는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어요. 내 조카가 오산AB에 있었는데 그때 죽었죠.


  아닙니다. 괜찮아요. 말씀이라도 감사하군요.


  아무튼 간에 당신네들이 호언장담하던 '외과적' 수단을 통한 핵능력 제거는 얼추 성공적으로 보였죠. TEL 비슷하게 생긴 차량이란 차량은 죄다 위성이나 감시자산에 포착됨과 동시에 박살내고 있었고, 당신네 특수부대나 우리 쪽 특수부대나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충성파 쪽에서 넘겨준 정보도 쏠쏠했죠.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가 핵에 대해서는 상당히 낙관적인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죠.


  내가 이 얘기를 왜하냐면, 이게 재앙의 씨앗이었거든요.


  아까 화학탄 얘기를 했죠?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화 되고, 국제화 된 메갈로폴리스 중 하나에요. 그런 서울 거리 한복판에서 민간인들이 목을 쥐어 뜯어가며 질식해가는, 순수한 공포 앞에 노출된 끔찍한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송출되어 나갔죠. 기자 양반은 당연히 그 사진 기억할거 아니에요. 퓰리처상 후보 올라갔던 그 사진 있잖아요. 방독면 쓴 군인 하나가 시체로 가득한 거리 한 가운데서 무릎 꿇고 주저앉아 있는걸 AP통신 기자가 찍은 그거요. 여담인데 그 군인 최근에 자살했어요.


  어쨌거나 원래 언론하고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당신네 대통령이었죠. 어마어마한 비난이 쏟아졌잖아요? 그러니 뭔가 여론을 반전시킬 만큼 상징적인, 당신네 대통령 좋아하던 말마따나 '크고 아름다운' 군사작전이 필요했겠죠. 


  흥남은 최적지였어요. 분석관이었던 제가 봐도 그래요. 북한 깊숙히 있었고, 해변도 넓어서 멋진 상륙작전을 보여주기에 좋았죠. 제해권도 확실해 초수평선 상륙도 수월했고, 대도시 함흥의 문간이라 상징성도 컸고, 조속히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에도 최적지였죠. 배후지 차단 효과도 노릴 수도 있었고, 여하간 전략적 중요성이 컸어요. 당신네 대통령한테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죠.


  당신네 해병대는 당신네 해병대대로 전통적인 '상륙작전'을 할 수 있다는데 눈깔이 뒤집혔었고, 우리 해병대는 우리 해병대대로 창군 이래 영원한 염원이던 대규모 한미연합상륙작전이 실체화 되어가니 물불 가리는 게 없었죠. 그쪽 합참은 합참대로 핵능력 제거가 꽤 순조롭게 이뤄지는데 해볼 만하겠다 싶었을 거고요. 그러니 연합사를 들들 볶았겠지.


  그리고 우리네 군 쪽에서는 빠르게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과 압박에 눌리고 있었어요. 우리 쪽 VIP는 VIP대로 대규모 사상자 통계와 직면하니 당신네 대통령만큼이나 선전할만한 성공이 절실히 필요했고요. 


  그래서 이 작전은 제가 듣기로는 단 3시간 만에 입안부터 실행이 결정됐다더군요. 실행에는 딱 5일 걸렸죠. 이마저도 원래 7일이 걸릴 것을 당신네 대통령이 들들 볶아 5일로 줄였다면서요? 상륙이 실행됐을 때는 북한 지역에서의 군사작전을 개시한지 단 10일 지난 시점이었어요. 전연군단 쿠데타 세력의 유의미한 저항이 옅어지기 시작한 시점이죠. 그래서 더 방심하는 분위기였는지도 몰라요. 게다가 근본부터가 급조된 작전이었는데 위험성 평가나 분석이 어떻게 제대로 될 수가 있었겠어요. 모든게 다 가라고 날림이었죠. 그런데도 상관없었어요. 모든 당사자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무시 된거에요. 그만큼이나 중대한 위험징후가. 


   상륙작전 전 5일 동안 흥남 근교에 시리아 공습 따위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규모의 공중 타격과 순항미사일 타격이 이루어졌죠.


  지역에 있던 TEL도 모조리 파괴되었다고 여겨졌어요.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파괴된 TEL중 하나가 이상했죠. 처음 표적 평가할 때 정보에 따르면 분명히 핵탄두 탑재된 TEL이었는데, BDA 보고서 사본에 찍혀온 사진엔 아무리 봐도 핵탄두가 없어 보였어요. 그 TEL은 우리 회사 특작팀이 그쪽 물개하고 합동으로 관측하고 화력 유도해서 제거한 거라 재차 확인해보려고 연합 특수전 사령부에 문의했죠. 근데 그쪽에선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하는 투로 씹어버리더군요.


  그래도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윗선에 올렸죠.


  묵살 당했어요.


  그리고 이틀 뒤 마전 리조트 해변에 한미해병대가 상륙했어요. 그들이 흥남 부두에 진입했을 때, 버섯구름이 피어올랐죠.


* * *


  그 날씨 좋던 6월 어느 날 흥남에서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가는 아마 영원히 추산할 수 없겠죠.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 민간인들 상당수는 흥남에 남았었고, 쿠데타군 잔당도 적잖이 흥남에 남아 있었죠. 아마 못해도 3만은 현장에서 죽었을거에요. 방사능 중독이나 부상 후유증으로 추가로 한 10만쯤 죽었을 거고요. 당신네는 해병 원정단 하나가 통째로 증발했고, 우리는 해병 연대급 이상 병력이 그 자리서 절단 났죠.


  어떻게 보면 흥남이 역사를 바꾼 변곡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흥남에서 핵불꽃에 데이고 기겁을 한 당신네는 콩고에서 수십만이 강간살해 당하던 동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기갑차량이 돌아다니던,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쓰이던, 남중국해 같이 당신네 필수 이익이 걸린 게 아니라면 이제는 눈 하나 깜짝 않죠.


  신기한 거 아세요? 자잘한 전투에서 십 수 명씩 장병들이 죽어나갈 때는 정부와 군에 온갖 비난이 쏟아졌는데,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 폭력이 눈앞에 들이닥치니 사람들은 압도되어 버리더군요. 그러고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리화를 해버리더라고요. 분노하는 대신 미화하는 것을 택했죠. 그 사건 자체가 성역화 되어버렸어요.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그게 진정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그렇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요?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닌 거 같아요. 그 사실 자체로는 도무지 감당해낼 수 없으니까 다들 편리하게 눈을 돌려버린 거죠. 그리고 덕분에 진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책임 소재를 물타기해서 슬쩍 빠져나가 버렸죠.


  애꿎은 사람들만 모가지가 달아났죠. 저도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유럽 생활을 하네요. 웃기지도 않는 일이에요.


  스탈린이 그랬던가요?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의 죽음은 통계라고. 어쩌면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과연 그 죽음들이 통계 이상으로 의미 있게 쓰이기나마 한 걸까 모르겠어요.


  김정은 생전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한 김정은 충성파 세력은 신분세탁해서 호가호위하고 있거나 해외로 튀었고, 수복한 북한 땅에는 마약갱단과 공작금을 뿌려대는 중국 공작원들이 판치죠. 그치들은 절대 인정 안하겠지만. 게다가 매년 국가 예산 사분의 일씩 꼬박꼬박 북한으로 빨려 들어간다는데 저기가 좀 사람 사는 곳다워지려면 제가 보기에는 한 기백년 걸릴 썽 싶네요.


  자 그럼 비핵화 성적표를 한번 매겨봅시다. 김씨 일가에 부역하며 온갖 반인륜 범죄는 다 저지른 부역자들을 잡아서 처단한 것도 아니고, 저 동네는 사람 생명 빨아먹는 블랙홀인지 매달 백 명 단위로 우리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그렇다고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마약 중독 같은 ‘북한 문제’는 점점 남쪽으로까지 스물스물 넘어오고 있죠. 그리고 애당초 제가 ‘우리 젊은이들’ 이라고 북한 사람들하고 분리해서 부르는 시점에서 사회 통합도 갈 길이 한참 멀었겠네요. 자, 그러면 도대체 그들의 죽음은 무엇을 위한 죽음이었나요? 나는 잘 줘야 D나 줄 수 있겠네요. 왜 D냐고요? 나라가 다행히 완전히 망하진 않았으니 낙제만 면한 거죠. 


  기자 양반 전 아직도 모르겠네요. 제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조금이라도 지금보단 뭔가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객기를 부려서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윗선에 직통으로 꽂아봤다면, 한 번만 더 특수사에 매달려 봤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알아요. 이런 가정은 의미 없는 거.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있냐고요?


  라이터 좀 빌릴 수 있나요?


  ...아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