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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자화상 황량히 잿빛으로 바싹 마른 억새풀만 가득한 광야에서 꼿꼿이 나뭇잎 하나 없이 나뭇가지만 무성하게 드리운 채 외로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와 마주쳤다. 그 이름 모를 나무를 지나쳐 걸어가려다가 까닭 없이 드는 서글픈 마음에 그 앞에 난 가만히 멈추어 선다. 그 이름 모를 나무가 처량해 보여 함께 앉으니 문득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잘 보아달라 읊조리는 그대 속삭임에 유심히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그대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이런저런 상념을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 매단 모습이 언젠가 겨울 뒤 봄기운 내리면 나뭇잎을 피워 보이겠노라 그렇게 되리라, 비웃는 잿빛 세상에 외로이 외치는 그 모습이 그제야 나는 아, 너는 나무가 아니라 나로구나 싶었다. 2017. 1. 9.
0704 09.01.17 별 다른 목적 의식도 없이 그저 침대에 눕기가 어째서인가 싫어 컴퓨터를 붙들고 있으면 새벽의 시간은 낮의 시간보다 배로 가속되어 흘러가는 듯 하다. 딱히 오늘 잠을 자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어깨 위에 살폿 앉아있는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일까 마취된 듯 무던해진 감각은 그런 이성적인 명령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것도, 그렇다고 순종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일관해온다. 가벼운 죄책감과 경미한 두통, 적당한 우울감과 피로감이 배합된 채로 새벽녘의 문턱에 앉아 있는 이 순간 나는 이유도 무엇도 없이 망연히 표류한다. 2017.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