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히 잿빛으로 바싹 마른 억새풀만 가득한 광야에서
꼿꼿이 나뭇잎 하나 없이 나뭇가지만 무성하게 드리운 채
외로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와 마주쳤다.
그 이름 모를 나무를 지나쳐 걸어가려다가
까닭 없이 드는 서글픈 마음에 그 앞에 난 가만히 멈추어 선다.
그 이름 모를 나무가 처량해 보여 함께 앉으니
문득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잘 보아달라 읊조리는 그대 속삭임에
유심히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그대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이런저런 상념을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 매단 모습이
언젠가 겨울 뒤 봄기운 내리면 나뭇잎을 피워 보이겠노라
그렇게 되리라, 비웃는 잿빛 세상에 외로이 외치는 그 모습이
그제야 나는 아, 너는 나무가 아니라 나로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