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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방/시

잿빛 자화상

by 경계인 A 2017. 1. 9.

 황량히 잿빛으로 바싹 마른 억새풀만 가득한 광야에서

 꼿꼿이 나뭇잎 하나 없이 나뭇가지만 무성하게 드리운 채

 외로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와 마주쳤다.


 그 이름 모를 나무를 지나쳐 걸어가려다가

 까닭 없이 드는 서글픈 마음에 그 앞에 난 가만히 멈추어 선다. 


 그 이름 모를 나무가 처량해 보여 함께 앉으니

 문득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잘 보아달라 읊조리는 그대 속삭임에

 유심히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그대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이런저런 상념을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 매단 모습이

 언젠가 겨울 뒤 봄기운 내리면 나뭇잎을 피워 보이겠노라

 그렇게 되리라, 비웃는 잿빛 세상에 외로이 외치는 그 모습이


 그제야 나는 아, 너는 나무가 아니라 나로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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